계엄 회동 주도 및 계엄 기획 비선으로 의심되는 노상원 전 정보 사령관 사진. (사진=뉴시스)
12·3 내란 사태 와중에 한국군이 북한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의혹이 여러 건 불거졌습니다. 윤석열 씨의 필요에 따라, 비상계엄 명분으로 활용하려고 군 당국이 남북한 국지적 충돌을 시도했다는 건데요. 북한이 오물풍선을 날릴 때 풍선을 띄운 북측 지역의 원점을 타격하라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시했다거나,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켰다거나 하는 설들을 국회 국방위원들이 제보를 토대로 제기했죠.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수첩에 '북방한계선(NLL)에서 북 공격 유도'라고 적어놓았음을 경찰이 확인하고 수사 중입니다.
설 만이 아닙니다. 공개된 현장도 있습니다. 해병대 부대는 지난해 11월27일 백령도에서 K9 자주포 200여발을 해상으로 사격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서해 남북 접경 수역은 육지의 군사분계선과 달리 남북한 사이에 합의된 경계가 없죠. 해상으로 사격하면 왜 우리 수역으로 포를 쏘냐라고 반발하며 남북한이 다투기 쉽습니다. 2010년 북한군이 연평도를 포격할 때도 한국군의 해상 사격훈련을 빌미로 삼았습니다. 문재인정부 때는 충돌을 피하려고 해병대가 장비를 육지 훈련장으로 옮겨 놓고 훈련하기도 했죠. 11월27일 해병대 해상 사격은 아슬아슬했습니다.
지난해 10~11월에는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해 우크라이나 전선에 병력을 파견하는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윤석열 씨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표단을 보내 브리핑을 시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했습니다.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제공하고 군사 요원을 파견하겠다고 부산하게 움직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이것도 우크라이나 전선으로부터 전쟁 비슷한 기운을 한반도로 끌어 들여오려던 속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거에도 북한 변수를 정치에 이용하려고 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북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북풍 사건이라고 불렀죠.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고 저지른 총풍 사건이 특히 유명한데요. 당시 청와대 행정관과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 공작원들이 북한 인사를 만나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혐의로 체포됐죠. 당시 실무 가담자만 처벌했고 배후 인물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수사 당국이 12·3 내란 사태를 수사하고 있는데요. 우리 군을 북한 공격을 유도하는 데 써먹으려고 했는지도 수사 대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사 당국은 북한 공격 유도설이 사실이라면 관련자한테 외환 유치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내란죄가 우리나라 내부에서 헌법기관을 정지시키려 한 죄라고 하면, 외환 유치죄는 외국으로부터 전쟁을 불러오는 죄입니다. 내란죄보다 훨씬 무겁고 나쁘죠.
아무쪼록 철저하게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면 좋겠습니다. 외환 유치죄를 확인한다면 강하게 처벌해 교훈을 남겨야 합니다. 외환 유치죄가 없었음을 수사 당국이 확인한다면 해당하는 군부대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전쟁은 너무나 중요하고 위험한 문제입니다. 전쟁에 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전쟁에 이기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엄청난 피해를 입죠.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가는 국민 의사를 결집해 전쟁을 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특정 정치인이나 소수 몇 사람이 자기 이익 위주로 판단해, 국민이 원치 않는 전쟁을 유발하면 곤란하죠. 이런 일이 없도록 안전장치를 둬야 합니다.
지난해 10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기념 시가행진에서 주한 미군부대 장병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에서는 헌법에 따라 의회가 전쟁을 선포하고, 군사 예산을 승인하며, 전쟁에 필요한 법률을 제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전쟁을 하려면 의회 결정을 통해 시작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미군 최고 사령관으로서 군사 작전을 수행할 권한을 가집니다. 전쟁 결정 권한은 의회가 행사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권한은 대통령이 행사하도록 견제와 균형 체제를 만들었죠.
의회와 대통령이 전쟁 권한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기도 합니다. 2011년에 테러리스트가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공격해 수많은 사람이 숨진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났죠. 이 사건 이후 미국 의회는 대통령에게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군사 작전을 승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Auth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 영어 약자로 AUMF라고 부릅니다. 이 법안은 대통령한테 군사 작전을 수행할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했죠.
그 뒤 여러 대통령이 이 법률을 근거로 삼아, 다양한 군사 작전을 수행했는데요.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지역 무장세력인 ISIS를 상대로 한 군사 작전을 확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에 이란의 군 고위 인사인 카셈 솔레이마니를 공습으로 죽였죠. 이때도 의회 사전 승인 없이 이 법률을 근거로 활용했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길어지자 미국 의회는 전쟁 종료를 요구했지만, 대통령이 반대해서 오랫동안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요즘 미국 의회는 대통령의 전쟁 권한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가 국방 운영을 통제하는 장치가 또 있습니다. 바로 국방수권법입니다. 영어로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NDAA라고 부르는데요. 미국 국방부와 연방 정부의 국방 관련 예산과 정책을 규정하기 위해 매년 만드는 법입니다.
이 법은 미국 국방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군사 예산, 군인 급여, 군사 작전, 동맹과 외교적 군사 협력, 국방 연구 개발에 관한 사항을 세세하게 규정합니다. 예를 들면 2021년 국방수권법에서는 주한 미군 병력으로 2만8500명을 유지하라고 명시했습니다. 세계 여러 지역의 미군 기지 숫자와 규모, 군사력 사용 원칙 등을 이 법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방수권법을 보면 군사력을 행정부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도록, 군사력 사용 원칙을 의회와 합의하도록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군조직법을 보면, '국군의 조직과 편성의 대강은 법률에 의한다'라고 규정했습니다. 법률은 국회가 만듭니다. 국군 운영에 관한 사항도 국회가 세밀하게 관여해야 맞죠.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국방 예산만 해도 미국처럼 사용 방향을 세밀하게 정하지 않습니다. 포괄적으로 항목별 금액을 책정한 수준으로 행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가 심의해 통과시킵니다.
남북한 사이 우발적 충돌을 막는 안전장치인 9·19 군사 합의를 윤석열정부가 효력 정지시켰습니다. 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들은 남북한 군사 직통 전화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안보 업무의 목적이 뭔가요? 평화를 유지하는 거죠. 안보 업무의 목적인 평화 관리 장치를 유지하는 데 윤석열정부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끝에 불법 비상계엄을 실시했고 그 배경으로 갖가지 북풍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미국 제도에 비춰보면 9·19 군사 합의, 군사 직통 전화 유지 등은 국방수권법에 포함할 사항입니다. 행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니고, 국회가 관여하고 국회 합의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전쟁은 중요하고 위험한 문제입니다. 특정 정치인과 소수 몇 사람이 잘못 판단해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도록, 외국은 안전장치를 둡니다. 우리도 12·3 계엄, 내란 사태를 계기로 군사력을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개선책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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