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김성은 기자] "어휴… 너무 비싸다."
지난 13일 설 제수용품 준비에 나선 사람들로 붐빈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장바구니를 끌며 지나가던 60대 여성이 잠시 멈춰 사과 가격을 보고는 탄식을 내뱉습니다. 사과 4개는 1만원에 판매됐는데요. 1개당 2500원꼴입니다.
민족 대명절 설 연휴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차례 준비에 나서는 대다수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상 기후 여파에 따른 신선 식품 수급 불균형 심화, 고환율 고착화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장바구니 물가가 전방위로 상승하는 까닭인데요.
올해 설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은 대형마트를 기준으로 40만원이 넘게 소요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인데요. 문제는 이 같은 통계 너머 현장에서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더욱 높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제수용품을 마련하는 데 있어 기후 변화를 감안한 소비가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설 제수용품 마련을 위해 현장을 찾은 서민들의 고민은 깊어만 갑니다. 뭐 하나 가격이 만만한 품목이 없는 탓입니다. 망원시장 앞 과일가게 안쪽으로 들어서니 상처투성이인 배가 3개씩 소쿠리에 담겨 있었습니다. 원래 9000원이었던 배 3개는 7000원으로 할인 판매 중이었는데요. 한 여성은 요리조리 보더니 배 한 소쿠리를 집어 들었습니다. 배 가격에 대해 묻자, "시장 내에는 1개에 7000원짜리 배도 있다. 3개 7000원이면 살 만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실제로 시장 내 다른 과일가게에서는 배 1개가 7000원에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시장 앞 가게에서 봤던 배와 크기는 비슷했지만 상처 없이 깨끗한 상품이었습니다. 배 외부의 흠집 여부가 가격 차를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가게 주인은 "배의 물량이 많이 없어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내일이면 8000원에 팔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달 13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의 한 과일가게에서 배 1개 7000원에 판매되고 있는 모습. (사진=김성은 기자)
이처럼 망원시장에서는 과일과 채소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졌습니다. 배뿐만 아니라 지난해 가격 급등세로 '금(金)'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사과 또한 여전히 비쌌습니다. 아울러 무 1개는 크기에 따라 2000~3500원, 시금치 1단은 3000원대에 팔렸습니다.
대형마트에서도 체감 물가는 높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망원시장 인근에 위치한 '홈플러스 합정점'에서는 이날 배가 동이 났는데요. 기존에 판매됐던 배 상품은 4개가 정상가 기준 1만5990원으로, 1개당 약 4000원 꼴입니다. 상품을 진열하던 한 직원은 "요즘 배가 비싸졌다"며 "현재 판매하는 상품은 알이 굵지 않다. 성수용품은 설날이 임박해야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마트는 멤버십 등 다양한 할인 정책을 통해 일부 품목의 가격 수준을 낮췄습니다. 사과 1.5㎏(4~6입)의 정상가는 1만2990원이지만, 제휴 카드를 사용하면 9990원으로 낮아집니다. 또 농할 쿠폰(농림축산식품부 할인 지원 쿠폰)까지 적용할 시 7000원대로 내려갑니다. 5만9900원인 한우 냉동 찜갈비 1㎏은 마이홈플러스 회원에게 1만5000원 할인된 4만4900원에 판매됐습니다.
이달 13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합정점'에서 무와 배추가 농림축산식품부 할인 지원이 적용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모습. (사진=김성은 기자)
설 차례상 40만원 돌파…역대 최고 수준
이처럼 현장에서 체감하는 물가가 높다 보니 일부 서민들은 차례상 차리기를 주저할 정도인데요. 이 같은 분위기는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감지됩니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설 차례상 비용의 경우 4인 가족 기준으로 전통시장은 30만2500원, 대형마트는 40만9510원이 발생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1년 전 대비로 전통시장은 6.7%, 대형마트는 7.2% 각각 상승한 수치이며, 모두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입니다.
이번 차례상 비용 상승에는 과일류 및 채소류 가격 폭등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장에서 이들 품목의 가격 상승이 단지 기분 탓은 아니었던 겁니다.
전통시장 기준으로 지난해 설 대비 과일류는 57.9%, 채소류는 32%씩 각각 급등했습니다. 사과(부사)의 경우 지난해 1월 19일 1만5000원에서 이달 8일 1만8000원으로 20% 상승했고, 같은 기간 배추는 1포기가 4000원에서 7000원으로 75% 뛰었습니다.
또 대형마트 기준으로는 1년 새 과일류는 48.9%, 채소류는 26.4% 오른 것으로 파악됐는데요. 배(신고)는 작년 1월 1만7970원에서 이달 3만4960원으로 94.6%나 급등했고, 무는 1개가 2440원에서 4500원으로 84.4%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품목은 이상 기후 여파로 작황이 악화하며 가격이 올랐는데요. 특히 과일류의 경우 사과는 전년 대비 비교적 작황을 회복했지만, 배는 작년 여름 폭염 및 집중 호우로 낙과 등 피해가 커지면서 생산량이 감소하고 상품성이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채소류는 무와 배추가 김장철로 인해 조기 출하가 많이 이뤄진 상황 속에, 최근 강력한 한파로 공급량이 부족해지며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이동훈 한국물가정보 팀장은 "평년 대비 설 연휴가 빠르고, 최근 한파 영향까지 더해져 가격대가 높게 형성돼 있는 품목이 있다"며 "좋은 품질의 재료를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서는 저장 기간이 비교적 긴 품목은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또 가격 변동이 잦은 채소류와 같은 품목은 기후 변화에 맞춰 구매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전통시장·대형마트 설 차례상 물가 비교 인포그래픽. (제작=뉴스토마토)
김충범·김성은 기자 acech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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