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제갈량이 와도 안되는 농협
2025-01-23 06:00:00 2025-01-23 06:00:00
지난 2013년 당시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농협금융 회장은 제갈량이 와도 안 되는 자리"라는 말을 남기고 농협 조직을 떠났다.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시점이었다.
 
관료 출신인 신 전 회장은 농협금융 수장에 선임된 이후 농협중앙회와 잦은 마찰 빚었다. 그가 "지주 회장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토로한 것은 농협중앙회의 경영 개입 때문이다. 농협중앙회가 지주사의 지분을 100% 보유한 대주주로서 인사·예산권을 틀어쥐고 금융 자회사 경영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을 말한다.
 
신 전 회장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그가 남긴 말을 요즘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리게 된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농협의 현실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농협금융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개최 이력을 받아보고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총 19차례 열린 임추위에 농협금융 회장은 단 한 번도 참여하지 못 한 반면 농협중앙회 출신(조합장)인 비상임이사는 100% 참석했다. 금융지주 회장은 산하 계열사 대표를 추천하는 것에 관여를 못하는데 중앙회 인사가 감놔라 배놔라 하고 있는 것이다. 
 
농협 측에서는 금융지주 회장을 임추위에서 배제시키라고 권고했던 과거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안을 핑계로 대고 있다. 하지만 회장 본인의 연임을 위해 나서지 못하도록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회장을 제외시키라는 것이지, 회장이 계열사 대표에도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아니다. KB·신한·하나금융지주 등은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위원장을 금융지주 회장으로 두로 있다.
 
그러는 사이 농협중앙회의 '코드 인사'는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 퇴직한 임원을 계열사 요직으로 복귀시키고, 최근 농협금융 인사에서는 보란 듯이 중앙회장과 동향이거나 직간접적 '연'이 있는 인사들이 지주 회장과 계열사 대표이사자리에 내려왔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선거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이라거나 흑묘백묘론을 들면서 인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중앙회장의 책임경영을 위해 그에 걸맞는 권한이 필요하다는 뉘앙스까지 풍기고 있다. 현재 농협중앙회장은 비상임·명예직으로서 지역조합 및 조합원 권익증진을 위한 대외활동으로 업무를 제한하고 있다. 인사권을 제한한 이유를 벌써 잊어버린 듯 하다. 대대로 중앙회장 관련 인사 및 비자금 비리가 이어지면서 지난 2010년 농협법 개정을 통해 인사권을 떼버린 것이다.
 
금융당국도 지난해까지는 농협중앙회의 인사 개입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었다. 금감원은 지난해 5월부터 농협금융과 농협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진행, 지배구조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금융지주사법 45조의4 '주요출자자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금지'에 대한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기검사 발표가 연기되고 해가 바뀌더니 금감원의 분위기는 묘하게 바뀌었다. 이복현 금감원장을 비롯해 금감원 내부에서는 농협의 '특수성'을 인정하자는 얘기가 들린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 지분을 100% 보유한 대주주이기 때문에 절차적 형식을 갖췄다는 것을 전제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수백억 규모의 횡령 사건과 임원이 연루된 부당대출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금융권 내부통제와 지배구조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당국과 금융사들은 본업의 근간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인사부터 여신 시스템까지 전방위적으로 손질하고 있다. 조직의 특수성을 앞세워 일부 금융사에 예외를 인정하다면 지배구조 개선의 구호는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이종용 금융부 선임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