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문성주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0일 6대 시중은행장을 호출했습니다. 야당 대표가 은행장들을 불러모은 것은 이례적인데요. 상생금융을 압박하며 민주당이 그 주도권을 쥐고 가려는 모양새입니다. 은행들은 대놓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민주 "민생 현안 청취하러"
이 대표와 KB국민·하나·신한·우리·농협·기업은행 등 6대 은행장들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현장간담회'를 갖습니다. 설 연휴 일정을 고려해 은행연합회 정기이사회를 한 주 앞당겼는데요. 이사회 1시간 전인 오후 4시께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 대표와 은행장들 외에도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민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들이 배석합니다. 은행연합회에서는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와 협의한 상생금융에 대해 설명하고, 진행 상황을 보고합니다. 상생금융은 국내 금융사들이 소상공인 등 취약 계층에 대한 금융 지원 정책인데요.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난 2022년 은행권의 '이자 장사'를 비판하면서 촉발됐습니다.
이 대표는 간담회에서 민생 회복을 위한 은행권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하며 상생금융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안건으로는 △가계부채 총량 관리 균형을 고려한 은행의 대출금리 인하 △가산금리 산정 시 법정출연금 제외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 △고환율 상황에서의 수출입 기업 지원 방안 △서민금융·채무조정 거절률 등이 거론됩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인 강준현 민주당 의원은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불안정한 정국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민생이 최우선 과제"라면서 "그간 서민과 소상공인·자영업자, 중소기업과 간담회를 진행했고 은행권 의견도 청취하기 위해 만든 자리"라고 설명했습니다. 상생금융 확대를 요구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주요 은행장들과 회동을 가진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하고 참석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은행권 "다른 대선주자한테도 불려다니는 것 아닌가 우려"
반면 은행들은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 대표가 유력한 대선주자이기 때문에 만나자는 요구를 뿌리치기 어려웠다는 입장입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가 부르는데 다른 일정을 핑계대고 안 가기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간담회 내용에 대한 걱정도 앞섭니다. 예대금리차가 벌어지면서 역대급 실적을 거둔 가운데 민생 회복이 간담회 주제인 만큼 은행권의 고통 분담 요구가 나올 것이란 판단에서입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이미 은행의 가산금리 체계를 정조준한 상태입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현 정부가 이자장사 돈 잔치라며 은행권을 때릴 때 극단적인 횡재세 도입을 먼저 주장한 곳이 민주당"이라며 "'준횡재세'라 불리는 가산금리 원가 공개 또는 인하를 위한 법안을 추진 중인데, 은행권이 반발하지 않도록 사전 단속하려는 것 아니겠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0월 민주당은 가산금리 산정 기준을 은행법에 명시하고 가산금리 세부 항목을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5대 국민 민생 법안’으로 선정하고 우선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금융권 안팎에서 과도한 경영 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지난해 12월 해당 항목을 삭제하고 대출금리에 법정출연금을 전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새로 발의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가산금리 내역 중 '대출목표이익률'만 공시하게 한 개정안도 등장했습니다.
일부 은행에서는 대관팀을 동원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사전 조사해 미리 시나리오를 짜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대표가 서민금융 및 중소기업 지원 확대 방안을 구체적으로 요청해 올 경우 어떻게 반응할지도 난감한 문제입니다. 현 정부의 금융정책이나 방침에 어긋나거나, 설사 방향이 어긋나지 않더라도 민주당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 자칫 '줄서기'로 비춰져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권에서는 "야당 대표까지 은행장들을 호출하는 마당에 다른 차기 대선주자들도 줄줄이 보자고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10여년 전의 기억을 소환하는 관계자들도 있었습니다. 2012년 11월 대선을 한 달여 가량 앞두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이번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은행장들과 회동을 가진 바 있습니다. 당 대표는 아니지만 야당 대선 후보가 은행장들과 만나는 자리도 이례적인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간담회 주제는 '따뜻한 금융 따뜻한 경제'를 주제였는데요. 문 후보는 국내 은행권이 손쉬운 수익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금융소비자를 소홀히 한다고 작심 비판한 바 있습니다. 문 후보는 해당 대선에선 낙선했지만, 대선후보들이 경쟁적으로 공약한 '금융민주화'는 새 정부 취임 이후 서민금융 대규모 확대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은행권은 야당 대표가 상생금융 확대나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지 긴장하고 있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 ATM기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문성주 기자 moonsj709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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