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발 '무역법 301조'…최악 땐 '한·미 통상분쟁'
"미국 기업 차별" 보복에…프랑스도 정책 '철회'
반도체 최혜국대우 '안갯속'…협상 상수된 '쿠팡'
2026-01-25 18:02:06 2026-01-25 18:15:04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김민석 국무총리와의 회담에서 가장 먼저 꺼낸 현안은 다름 아닌 '쿠팡'이었습니다. 국내법 집행 사안이 미 행정부 최고위급 외교 의제로 직행한 것입니다. 쿠팡 투자사의 미국 무역법 301조 청원이 당장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조사 카드가 한국 압박 지렛대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 이번 사태의 구조적 위험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사실상 '대리전'…국제 분쟁화 노리는 '쿠팡'
 
25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 지분을 보유한 미국 투자회사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한국 정부가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우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미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와 무역 구제 조치를 요청했습니다. 한·미 FTA상의 '공정·공평 대우 의무'와 '비차별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정부가 쿠팡을 수년간 표적으로 삼으면서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고용노동부 등 여러 기관의 조사와 제재가 쿠팡에 집중됐다며, 이를 '선택적 법 집행'에 따른 차별로 규정했습니다. 무역법 301조 청원서에서는 이번 조치가 쿠팡을 넘어 미국 상거래에 대한 차별에 해당할 뿐 아니라, 한국에서 사업하는 미국인의 신변 안전과 법적 책임 위험까지 우려되는 사안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쿠팡은 "개입한 바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301조 청원을 제기한 두 투자사는 쿠팡 경영진과 직접 연결돼 있습니다. 그린옥스 창립자는 쿠팡의 미국 모회사인 쿠팡아이엔씨(Inc.)의 사외이사이자 보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10년 넘게 이사회에 참여해온 핵심 인사입니다. 알티미터 회장 역시 김범석 쿠팡Inc 의장과 하버드경영대학원(HBS) 동문으로, 하버드 동문과 상장 초기부터 쿠팡에 투자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 왔습니다. 
 
형식상 문제 제기는 투자사가 했지만, 쿠팡과 무관한 제3자 분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두 회사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재판도 예고하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섰습니다.
 
쿠팡 창업주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사진=연합뉴스)
 
밴스, 한국 입장 이해?…외교 수사 뒤에 숨은 '압박'
 
정부는 이번 사안이 통상 문제로 확대 해석되는 데 선을 긋고 있지만, 위기감은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23일(이하 현지시간) 41년 만에 현직 총리로서 단독 방미에 나서 밴스 부통령과 면담했는데, 밴스 부통령이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쿠팡' 문제였습니다. 
 
김 총리는 "쿠팡에 대해 차별적 대우가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밴스 부통령도 한국 시스템에 따라 법적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며 이해를 표했다"며 "다만 이 문제가 양국 정부 사이 오해로 번지지 않도록, 과열되지 않게 '관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김 총리는 밴스 부통령이 언급한 '관리'의 의미에 대해 '양국 간 소통을 강화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사안을 미국 부통령이 외교 현안으로 직접 꺼낸 데다 무역법 301조 청원과 맞물린 상황을 고려하면, 밴스 부통령의 발언은 한국의 법 집행이 통상 갈등으로 번질 수 있음을 전제한 '압박성 메시지'에 가깝습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24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쿠팡 수사는 통상 이슈와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통상과 무관하다면 굳이 분리 대응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정부 내부에서도 이번 사안을 잠재적 통상 변수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JD 밴스 부통령과 면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총리실)
 
반도체·대미 투자 협상에 끼어든 '쿠팡 변수'
 
문제는 미국이 쿠팡 사안을 '반도체 관세'와 '대미 투자' 협상에서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통상 지렛대로 흡수했다는 데 있습니다. 무역법 301조는 실제 보복 조치에 이르지 않더라도, 조사에 착수하는 순간부터 언제든 관세 등의 제재를 꺼낼 수 있는 상태를 만들며 그 자체로 상대국에 대한 협상 압박 수단으로 작동합니다.
 
프랑스 '디지털 서비스세'(DST)에 대한 미국 압박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2019년 프랑스가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겨냥해 별도 세금을 부과하자, USTR은 이를 차별 행위로 규정하고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샴페인·핸드백·화장품 등 프랑스산 수입품 63종에 대해 100% 관세 부과 가능성을 거론했고, 프랑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의 디지털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세금 징수를 유예했습니다. 조사 착수 자체가 상대국의 정책 집행을 흔드는 수단으로 작동한 것입니다. 
 
이 같은 구조를 감안하면, 반도체나 자동차 등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이 보복 리스트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될 경우, 대상이 쿠팡 사안에만 그치지 않고 한국의 디지털 규제 전반으로 확대될 여지도 있습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국회에서 논의된 '온라인 플랫폼법'과 최근 제정된 '허위조작정보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미국 기업을 차별할 소지가 있다며 문제 삼아왔습니다.
 
미국 매체 <폴리티코>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관세 협상 과정에서 그리어 USTR 대표를 비롯한 행정부 당국자들은 "한국이 디지털 규제 관련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경고했습니다.
 
공정위는 쿠팡의 '인기 상품 가로채기 의혹' 등을 놓고 대규모 현장 조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여부와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 문제도 조사 범위에 포함됐습니다. 공정위는 외교·통상 논란과는 별개로 국내법 집행 절차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