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이식은 현대 의학이 선사한 ‘제2의 생명’이라 불리지만, 이식을 받은 환자들에게는 평생 짊어져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이식된 장기를 ‘외부 침입자’로 인식해 공격하는 면역 거부 반응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환자들은 평생 강력한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신 부작용은 또 다른 질병의 불씨가 되곤 했습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러한 이식 의학의 고질적인 난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기술을 내놓았습니다. 포항공대(POSTECH) 차형준 교수팀과 이화여대 주계일 교수팀이 공동 개발한 ‘면역 방패(Immune-Shield)’ 기술이 그 주인공입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러한 장기 이식의 고질적인 난제를 해결해줄 혁신 기술인 ‘면역 방패(Immune-Shield)’를 개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사진은 장기이식 수술 장면. (사진=뉴시스)
전신 투여 면역억제제의 부작용
기존의 면역억제 방식은 알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전신 투여’ 방식입니다. 약물이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다 보니, 정작 보호해야 할 이식 장기 외의 정상 세포까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는 신장 독성, 간 손상, 감염 취약성 증가 등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집니다. 장기를 살리기 위해 먹는 약이 오히려 몸 전체의 면역력을 무너뜨리는 ‘면역의 역설’이 발생하는 셈입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물을 온몸이 아닌 장기에만 붙여둘 수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해답은 거친 파도 속에서도 바위에 단단히 붙어 있는 ‘홍합’에서 찾았습니다.
연구팀은 홍합 유래 접착 단백질을 활용해 면역억제제를 함유한 미세한 하이드로젤 입자(마이크로젤)를 만들었습니다. 이 마이크로젤은 수분이 가득한 장기 표면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착’ 달라붙는 강력한 접착력을 가집니다.
사용법은 간단해서 수술 과정에서 이식될 장기 표면에 이 물질을 스프레이 형태로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면역 방패’는 장기 표면에서 면역 세포의 침투를 물리적으로 막는 동시에, 내포된 면역억제제를 서서히 방출하여 국소 부위의 염증 반응을 효과적으로 억제합니다.
연구팀이 실시한 이종 장기 이식 실험 결과는 놀라운 수준입니다. 면역 방패를 적용한 경우, 기존 방식보다 면역 억제 효과가 2배 이상 높게 나타났으며 이식된 조직의 생존 기간도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스프레이 방식은 복잡한 형태의 장기 표면 어디든 고르게 코팅할 수 있어 실제 임상 적용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차형준 교수는 “우리나라의 원천 소재인 홍합 유래 접착 단백질을 통해 이식 의학의 오랜 난제를 해결할 전략을 제시했다”며, 특히 “부족한 기증 장기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종 장기 이식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POSTECH과 이화여대 연구진이 공동 개발한 ‘면역 방패(Immune-Shield) 시스템 연구 개념도. (이미지=Journal of Controlled Release)
환자들의 ‘약 없는 일상’을 향해
이번 연구 성과는 약리학 분야 권위지인 <저널 오브 컨트롤드 릴리즈(Journal of Controlled Release)>에 실렸습니다.
아직 임상 적용까지는 추가적인 검증 단계가 남아있지만, ‘뿌리는 면역 방패’가 실용화된다면 환자들은 매일 한 움큼씩 먹어야 했던 면역억제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전신 부작용에 대한 공포 없이 이식된 장기와 건강하게 공존하는 시대가 목전에 와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포스코홀딩스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