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이란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헬륨에 이어 희귀금속들의 가격도 오르면서 반도체 공급망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전쟁 물자 수요 증가와 중국의 전략 광물 수출 규제가 맞물리면서, 가격 상승세가 텅스텐 등 소재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업계는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원가 부담 가중이 불가피한 만큼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강원 영월군 상동광산 갱내에서 조사단이 텅스텐 광체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3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희귀금속들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텅스텐옥사이드 가격은 킬로그램(kg)당 228.17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이는 지난달 대비 42% 급등한 수치입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갈륨(Ga) 가격은 지난달 대비 12.19% 상승한 kg당 2025위안에 거래됐습니다.
텅스텐은 반도체의 배선 소재로 주로 사용되며 미세 회로를 구성하는 필수 소재입니다. 특히 전기 전도성이 뛰어나 메모리 업체들의 낸드플래시 공정에서 육불화텅스텐(WF6) 가스 형태로 대량 소비됩니다. 갈륨 역시 기존 실리콘(Si) 반도체보다 안정성과 전력 효율이 높은 화합물 반도체의 핵심 소재로 쓰입니다. 대표적으로 전력 손실이 적고 소형화가 유리한 질화갈륨(GaN) 전력반도체 등이 꼽힙니다.
희귀금속들의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이란 전쟁의 여파가 큽니다. 갈륨의 경우, 알루미늄을 정련하는 과정에서 부산물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최근 중동 지역의 에너지 공급 차질이 알루미늄 생산에 영향을 미치면서 갈륨의 수급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전쟁 여파로 군수 물자 수요가 급등한 점도 텅스텐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텅스텐은 광물 중에서도 밀도가 가장 높은 편으로, 반도체뿐만 아니라 장갑차 관통 무기·미사일 안정화 장치·총알 탄두 등에 쓰이는 ‘방산 광물’로서 수요가 많습니다. 이에 반도체로 향하던 텅스텐 물량이 무기 제조로 옮겨 가면서, 텅스텐 공급이 부족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6를 찾은 한 관람객이 반도체 웨이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텅스텐과 갈륨 등 희귀금속은 중국이 전 세계 공급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중국의 희귀금속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황입니다. 실제로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올해 수입한 갈륨과 텅스텐 물량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2%, 59%에 달합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말부터 중국이 전략 광물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가격이 더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진단입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BMO캐피탈마켓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과 중국의 수출 제한으로 인해 지난 1년 사이 텅스텐 가격이 5배나 폭등했다”면서 “수년간의 투자 부족이 초래한 텅스텐 공급 부족으로 가격 상승은 심화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헬륨을 비롯해 희귀금속들은 대체재가 없다는 점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난항이 예상됩니다. 특히 헬륨은 웨이퍼 냉각을 유지하고 장비의 내부 환경을 제어하는 데 필요해 반도체 공정 전반에 쓰입니다. 공급난이 계속될 경우, 원가 부담에 그치지 않고 생산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업계가 원자재 수급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이유입니다.
반도체 기업들은 당장 생산라인이 멈출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업체들은 원자재 수급 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헬륨 재사용 시스템 등 재활용 설비를 확대해 사용량 줄이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큰 타격이 없지만, 결국 지금과 같은 공급망 불안이 길어진다면 전체적인 비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시장을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공급망 구조를 다변화하고, 재고를 늘리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