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게르망트 쪽' 파트의 핵심은 '게르망트'라는 성(姓)이 가진 절대적이고 신화적인 위력이다. 화자 마르셀에게 게르망트라는 이름은 저명한 귀족 가문의 명칭을 넘어,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함과 역사적 신비가 깃든 유토피아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마르셀이 그토록 동경한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살롱에 발을 들이고 그들의 세계를 내부에서 관찰하게 되었을 때 그가 마주한 실체는 전혀 달랐다. 게르망트 가문의 권위는 지적 탁월함이나 도덕적 숭고함이 아니라, 자신들이 구축한 사교계의 배타적인 진입 장벽과 '누구를 받아들이고 배척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독점적 통제력에서 나오고 있었다.
"게르망트라는 이름은 콩브레의 하늘 위에 떠 있는 성과 같았고, 내게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그 성벽 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내가 발견한 것은 우아함의 가면을 쓴 정교한 거절의 메커니즘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토에 누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유일한 중재자였으며, 그 결정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름을 제국처럼 군림하게 만들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재구성)
소설 속 게르망트 가문의 살롱은 오늘날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모습을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예견한다. 현대의 거대 테크 기업들 역시 혁신과 편의라는 매혹적인 이름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해 자신들의 생태계 안에 묶어둔 뒤, 시장의 입구와 출구를 통제하는 '디지털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군림한다. 그들이 구축한 폐쇄적인 디지털 사교계 안에서 중소 협력업체와 개발자들은 생존을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규칙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스스로 구축해놓은 독점적인 디지털 생태계에서 시장지배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지=챗GPT)
화려한 신화 뒤에 숨겨진 독점의 지대 추구
경영학에서 플랫폼 독점의 폐해는 단일 기업이 다면 시장(Multi-sided Market)의 네트워크 효과를 기반으로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여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협력업체나 소비자로부터 과도한 수수료나 데이터를 착취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프루스트가 게르망트 가문의 권위를 "타인을 배제함으로써만 유지되는 신기루"라고 통찰했듯, 현대의 플랫폼 독점 역시 생태계의 공생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지대 추구에만 몰두할 때 거대한 규제적·도덕적 탄핵에 직면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Apple)과 구글(Google)의 인앱 결제 강제 조작 및 독점 논란이다. 애플은 아이폰이라는 매혹적인 하드웨어 생태계를 구축한 후, 아웃사이더들이 자사 앱스토어를 통하지 않고는 소비자들과 만날 수 없도록 장벽을 쌓았다. 그리고 30%라는 천문학적인 수수료를 통행세로 징수했다. 이러한 불공정 관행은 2020년 게임 개발사 에픽게임즈(Epic Games)와 전면전으로 번졌다. 에픽게임즈가 자체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려 하자 애플은 '포트나이트'를 앱스토어에서 즉각 퇴출하는 조치를 취했다. 비록 법적 공방이 다각도로 진행 중이나, 이 사건은 플랫폼이 장터의 제공자를 넘어 시장의 주권자로 군림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유럽연합(EU)이 2024년 디지털시장법(DMA)을 본격 시행하며 애플과 구글 등 6대 플랫폼 기업을 강하게 규제하기 시작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아마존(Amazon)의 이중적 지위 남용 역시 플랫폼 독점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아마존은 제3자 판매자(3P)들에게 시장 플랫폼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신들도 직접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판매하는 경쟁자(1P)로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아마존은 입점업체의 판매 데이터, 고객 선호도, 물류 흐름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해, 어떤 상품이 잘 팔리는지 파악한 뒤 유사한 자체 상품을 출시해 상단에 노출하는 '자기우대(Self-preferencing)' 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EU 집행위원회로부터 강력한 반독점 제소를 당했다. 입점업체에게 아마존은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게르망트의 이름'이지만, 그 이름 아래서 자신들의 혁신적 자산과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탈취당하는 약탈적 구조에 신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갈등은 반복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사 가맹 택시인 '카카오T블루'에 유리하도록 호출 알고리즘을 운영했다는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수백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 받은 사건이나, 쿠팡이 자체 PB 및 직매입 상품을 검색 알고리즘에서 우대 노출하고 임직원 리뷰를 활용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은 사건은, 플랫폼이 '심판이자 선수'의 지위를 동시에 가질 때 어떤 공정성 논란이 발생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장 티롤의 통찰: 다면 시장의 균형과 지배력 전이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장 티롤 프랑스 툴루즈대 교수는 다면 시장(Multi-sided Markets)과 플랫폼 규제 이론을 통해 이 문제를 학술적으로 정교하게 해부한다. 티롤 교수는 플랫폼 비즈니스가 일반적인 단면 시장과 달리 교차 네트워크 외부성(Cross-side Network Externalities)을 가짐을 규명했다. 즉, 플랫폼 한쪽 집단(예: 소비자)의 규모가 커질수록 다른 쪽 집단(예: 판매자·개발자)이 얻는 효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결국 시장이 빠르게 거대 플랫폼으로 수렴되는 '승자독식(Winner-Take-All)' 현상이 발생한다고 봤다. 그의 핵심 통찰은 플랫폼이 이러한 네트워크 효과를 독점한 이후, 교차 보조(Cross-subsidization) 전략을 악용해 경쟁을 원천 차단한다는 점에 있다. 소비자에게는 서비스 가격을 낮추거나 무료로 제공해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를 만들면서 시장을 지배하고, 대안이 없는 판매자나 콘텐츠 공급자에게 높은 수수료와 불합리한 거래 조건을 부과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비대칭적 가격 책정을 집행한다.
나아가 플랫폼은 한 시장의 지배력을 인접한 다른 시장으로 전이(Leveraging)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토를 끝없이 확장한다. 게르망트 가문이 사교계의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정치, 예술, 언론의 영역까지 자신들의 입김 아래 두려 했던 것처럼, 현대의 거대 플랫폼 역시 메신저나 검색이라는 본래의 영토를 넘어 쇼핑, 금융, 모빌리티, 배달 영역까지 독점의 성벽을 쌓아 올린다. 이 과정에서 중소 협력사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인프라에 종속되어, 자생력을 잃고 플랫폼의 단순한 세포 조직으로 전락하게 된다.
성문은 스스로 열리지 않는다
여기서 냉혹한 비즈니스의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독점의 권력을 쥔 주체는 역사적으로 스스로 성문을 열어 양보한 적이 없다. 게르망트 가문의 귀족이 자신들의 배타적 특권을 내려놓은 것은 그들의 자발적 성찰 때문이 아니었다.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프랑스 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놓은 거대한 사법적·정치적 스캔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흥이라는 외부의 거센 파도가 그들의 온실을 강타했을 때 비로소 그들은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독점 플랫폼의 행보 역시 이와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플랫폼 대기업들은 가끔 상생 협약을 체결하거나 중소 개발사를 지원하는 기금을 조성하는 등 자발적 개방을 홍보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개방이 아니라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기만이자 우회술에 가깝다. 플랫폼이 실행하는 이른바 부분적 개방은 규제 기관의 철퇴를 피하고 여론의 비판을 잠재우면서도, 비즈니스의 가장 핵심적인 통제권과 초과 이윤(지대) 만큼은 결코 침해받지 않도록 정교하게 설계한 방어벽이다.
예컨대 외부 앱 마켓의 진입을 마지못해 허용하면서도 타사 결제 수단을 쓸 때 복잡한 경고 창을 띄워 사용자 경험을 고의로 훼손하거나, 오픈 API를 제공하되 핵심 알고리즘과 원천 데이터에는 철저히 장벽을 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완전히 문을 닫아 규제의 표적이 되는 것보다, 통제 가능한 범위 내의 부분적 개방 자세를 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독점적 지배 지위를 더 오래, 더 안전하게 유지하는 영리한 경쟁 우위 전략이 된다.
결국 이 성벽을 깨뜨리는 원동력은 독점자의 도덕적 각성이 아니라, 외적인 압력 즉 시민사회의 조직적 자각과 제도적 강제력뿐이다. 소비자 주권의 자각을 통한 불매 운동 및 대안 플랫폼 지지, 노조와 중소상공인 단체의 연대를 통한 문제 제기는 여론의 압력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흐름이 마침내 법제화해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할 때 비로소 독점의 카르텔은 균열을 일으킨다. 유럽의 디지털시장법(DMA) 제정이나 미국 법무부의 구글 반독점 소송 및 구조적 분할 요구는 결코 플랫폼의 선한 의지에 기대어 성취된 것이 아니다. 법과 제도의 강제적 개입만이 거대 성벽을 허물고 공정한 거래 운동장이 회복되는 역사의 필연적인 전제 조건인 셈이다.
상생의 거버넌스와 디지털 포용성
게르망트의 폐쇄적 성벽을 무너뜨리고 공정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 전략은 '상생의 거버넌스'와 '디지털 포용성'의 확립이다. 대기업의 양보나 시혜적 상생 기금 마련을 뜻하지 않는다. 플랫폼과 협력업체가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비즈니스 구조 자체에 내재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플랫폼의 권력은 노출 순위와 노출 여부를 결정하는 블랙박스 형태의 알고리즘에서 나온다. 공정한 거버넌스를 위해서는 알고리즘의 주요 변수와 원칙을 외부에 투명하게 공시하고, 플랫폼이 자사 서비스나 PB 상품을 우대하지 못하도록 독립적인 알고리즘 감시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또한 플랫폼이 독점하는 고객 구매 패턴 등의 비식별 데이터를 입점 협력사에게도 공정하게 개방해,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디지털 자생력을 길러줘야 한다.
상호운용성 보장과 데이터 이동권 또한 핵심이다. 소비자와 판매자가 언제든 비용 없이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멀티호밍(Multi-homing)' 장벽을 낮춰야 한다. 유럽의 DMA가 강제하는 것처럼 메신저 플랫폼 간의 상호 연동을 보장하고, 판매자가 쌓아온 신뢰도 평점과 리뷰 데이터를 다른 플랫폼으로 그대로 이전할 수 있는 '데이터 이동권'을 제도화해야 한다. 플랫폼이 가두리 양식장식 '락인 전략' 대신, 더 나은 서비스와 가치 제안으로 경쟁하도록 강제하는 장치가 된다.
공유 가치 창출(CSV)형 이익 분배와 '프로토콜 경제(Protocol Economy)'
전통적인 주주 자본주의와 거대 플랫폼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혁신적 대안이 바로 프로토콜 경제(Protocol Economy)다. 정확하게 확립된 개념은 아니지만 프로토콜 경제는 시장의 주권이 플랫폼 운영자라는 소수의 독점적 거인에게 집중되는 플랫폼 경제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설계된 분산형 경제 모델이다. 블록체인 등 스마트 계약 기술을 활용해, 사전에 합의된 객관적 계약 규칙(프로토콜)에 따라 생태계 참여자 모두가 기여한 만큼 공정하게 보상을 나누는 상생의 다자간 협력 체계를 의미한다.
프로토콜 경제의 지적 기원은 뉴욕 신학교의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 교수가 주창한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숄츠 교수는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거대 플랫폼이 노동자와 자산 제공자의 가치를 착취하는 구조를 비판하며, 플랫폼의 소유권과 의사결정권을 참여자가 나누어 가지는 협동조합 모델을 제시했다.
이러한 사회학적 문제의식은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과 결합하면서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스마트 계약과 탈중앙화 자율조직(DAO)의 개념을 구체화하며, 중개자 없이 분산된 개인들이 코드화한 규칙 아래 자율적으로 협력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탈중앙화 프로토콜 생태계의 기술적 기틀을 닦았다. 이후 이 개념은 단순한 암호화폐 생태계를 넘어 실물 경제의 대안으로 진화했다.
최근 성과급 규모를 둘러싼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사회적 배당' 또는 '사회 환원적 성과 공유'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넓혔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전자 사례와 '사회적 배당(Social Dividend)'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삼성전자 노사 분쟁을 계기로 거론되고 있는 '사회적 배당(Social Dividend)' 혹은 '사회 환원적 성과 공유'에 관한 논의 역시 넓은 의미에서 프로토콜 경제의 분배 철학 영역에 포섭될 수 있다. 사회적 배당 개념은 길드 사회주의와 시장사회주의 전통 속에서 발전해 왔으며, 특히 제임스 미드 같은 경제학자들은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단지 자본가 개인의 성취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축적된 지식·인프라·제도적 기반 위에서 가능해진 만큼, 그 이익의 일부가 시민 전체에게 환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삼성전자 노사 갈등 국면에서 나타난 성과급 분쟁과 이익 공유 담론은 중대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현재의 갈등은 오직 기업(경영진), 주주, 노동자(노조)라는 폐쇄적인 내부 삼자 구도 안에서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천문학적인 초과 이윤의 분배를 두고 자본과 내부 노동이 벌이는 제로섬 게임의 연장선에 놓여 있을 뿐, 정작 그 가치가 창출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준 진짜 기여자이자 다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핵심 주체인 사회에 대한 배당 관점은 완전히 실종돼 있다.
실체적 진실을 들여다보면, 삼성전자가 누리는 글로벌 초과 이윤과 경쟁 우위는 단순히 주주의 자본 투자와 임직원의 노동력 투입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대규모 세제 혜택,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수자원과 전력 등 공공재 인프라의 독점적 사용, 국가 예산이 투입된 고등교육 기관을 통해 배출된 우수한 인적 자원, 그리고 기후 피해나 지역사회 불균형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묵묵히 감내한 공동체의 암묵적 지지가 결합돼 탄생한 사회적 총체성의 결과물이다.
만약 이 분배의 계약 프로토콜이 오직 주주와 내부 임직원 간의 성과급 잔치로만 끝난다면, 이것은 다면 시장에서 한쪽의 고혈을 짜내 내부의 소수 귀족 가문만 이익을 나누어 가졌던 게르망트 가문의 배타적 살롱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기업이 낸 초과 이윤의 일정 비율을 국가 과학기술 펀드에 재기부하거나, 협력사 상생 기금을 넘어 지역사회 탄소 저감 프로젝트와 미래 인재 육성 기금으로 의무 편성하는 것 등이 제도화한 오프라인 프로토콜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사회적 배당을 누락한 채 진행한 임금·성과급 투쟁은 프로토콜 경제의 껍데기만 빌려온 이기적 '카르텔 분배'에 불과하며,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해 몰락한 게르망트의 사교계처럼 시민사회의 매서운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기업과 노동, 그리고 사회가 다 함께 참여하는 완전한 삼각 프로토콜이 완성될 때에만 비로소 대기업 지배구조는 지속가능한 미래 경영 서사로 도약할 수 있다.
"그 위대한 이름은 마침내 그들만의 좁은 방 안에 갇혀 먼지 속에 바스러졌다. 성벽 밖의 세상이 요동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때,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유일한 특권은 결국 누구에게도 아무런 가치를 주지 못하는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재구성)
[안치용의 Critique: 성벽 안의 평화는 지속될 수 없다]
게르망트 가문은 자신들의 영토를 철저히 통제함으로써 영원한 지배를 꿈꿨지만, 결국 시간의 흐름과 사교계 외부의 사회적 변혁(드레퓌스 사건, 자본가의 대두) 속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폐쇄성을 기반으로 한 권력은 외부의 자양분을 수혈받지 못하는 한 스스로 고사하기 마련이다.
이제는 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던 주주 자본주의 체제에서 한 걸음 나아가, 참여한 모두의 몫을 기술적·제도적 규칙으로 분배하는 프로토콜 경제의 가치와 '사회적 배당'의 철학을 비즈니스의 토양에 이식해야 할 때다. 분배의 대상에는 주주와 내부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의 생존 토대를 제공하는 사회 전체가 명확한 기여자로서 당당히 포함돼야 한다. 거버넌스는 성벽을 높게 쌓는 것이 아니다. 성문을 열고 외부 혁신가들과 공동체가 자유롭게 드나들며 가치를 공유하도록 돕는 포용력에서 바람직한 거버넌스와 지속가능한 기업이 탄생한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