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진규기자] 올들어 부실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영업정지를 당하고 고객들은 돈을 빼가는 금융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신뢰'를 근간으로 하는 금융계에서 벌어지는 이번 사태를 보다가 문득 '양치기 소년'과 '벌거벗은 임금님'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김석동(사진) 금융위원장이 취임 직후 '벼르고 벼르던'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겠다고 할 때 시장은 움찔했다. '관치'의 이미지가 워낙 강한 김 위원장의 이름 때문이기도 했고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더는 두고 볼 문제가 아니라는 시장의 공감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마침내 지난달 삼화저축은행에 영업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올해 상반기 중 추가적인 저축은행 영업정지는 없다'고 못박았다. 금융시장 불안을 의식한 관료다운 언급이긴 했지만, 시장은 '과연 그럴까'라며 의아해했다.
금융당국을 믿고 돈을 맡겨뒀던 저축은행 고객들은 한달여 만에 뒤통수를 맞았다. 금융위는 지난 17일 부산·대전저축은행에 대해 다시 영업정지 조치를 단행했다. 이번에는 고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뱅크런 조짐이 시작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 때도 "추가적 영업정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과도한 예금인출이 발생하지 않는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다.
이틀 후인 지난 19일 부산2저축은행 등 4곳의 저축은행이 추가로 영업정지가 결정됐을 때도, 21일 부산을 찾아 부산지역 뱅크런(예금인출사태)를 진화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하면서도 김 위원장은 '추가적인 영업정지는 없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예금자들은 분노했다. "당국의 말을 믿고 예금을 인출하지 않고 돌아갔는데, 바로 다음날 아침 기습적으로 영업정지를 내렸다"며 울분을 토했다. "추가적인 영업정지는 없다던 김 위원장이 '늑대가 왔다'는 말을 3번 외친 '양치기 소년'과 뭐가 다르냐"는 비아냥이 고객들 사이에 돌았다.
물론 금융당국과 김 위원장도 할말은 있다. 단서처럼 "과도한 예금인출만 없다면" 추가적인 영업정지를 하지 않아도 될 뻔 했다. 하지만 이런 단서가 '양치기 소년'이라는 오명을 씻기엔 부족하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삼화저축은행에 이어 한달만에 발생한 이번 사태가 해당 은행들의 부실한 재정상태 뿐만이 아니라 소문을 타고 흐르는 불안심리와 이로 인한 대규모 예금인출사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예금인출로 인한 추가영업정지 가능성을 인정하고 '추가적 영업정지가 없다'는 등의 불필요한 호언장담식 멘트를 남발하지 말았어야 했다. 곪을대로 곪아 터지기 직전에 놓은 저축은행들의 부실 상황은 시장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취임 당시 김 위원장 스스로 '강력한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외쳐 놓고 고객들은 '별 일 없겠거니'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봤다면, 이는 금융당국의 무책임이고 무능력이다.
신뢰를 근간으로 하는 금융시장에서 금융당국이 신뢰를 깨 버리니, 당국을 믿고 돈을 은행에 맡겼다가 뒤통수를 맞은 고객들의 불안과 분노가 증폭되는 것은 당연하다.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김석동 금융위원장에 대한 고객들의 분노는 여기서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김 위원장은 19일 부산지역 저축은행을 돌아보고 불안심리를 진화하는 과정에서 다음날 위원장 자신이 불안하다고 꼽히는 우리저축은행에 2000만원의 예금을 예치하겠다고 나섰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르면 5000만원 이후 예금은 보호를 받는다. 이번 저축은행 연쇄 영업정지로 피눈물을 흘리는 고객들은 5000만원이 넘는 돈을 맡겼다가 인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김 위원장이 '불안 심리 해소'용으로 맡긴 2000만원은 저축은행이 파산해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다. 5000만원 이상을 맡겼다가 자기 돈을 날린 고객들에게 김 위원장의 '2000만원 예치'는 '알맹이 없는 쇼'로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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