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지욱기자] 돈은 편리하다. 또한 막강하다. 일상생활의 웬만한 불편거리는 대부분 돈으로 해결된다. 돈의 논리를 들이대면 기자가 써내는 기사도 시장이 반응하는, 시장의 가격을 움직이게 하는 내용이 의미를 갖게 된다. "로또만 되면…"과 같은 일상적인 넋두리만큼이나 '돈 많이 벌자'는 매일의 다짐은 탐욕스럽기보다 기업가 정신을 가진 열정적인 사람으로 읽힌다. 성역으로 여겨지던 사랑도 이제 돈 앞에서 완전히 무릎 꿇었나 보다. 10여 년 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얼마면 되니"라는 원빈의 울부짖음에 대부분의 여성들이 조용히 묘한 쾌감을 느꼈다면 요즘 한 개그프로그램에서는 개그우먼이 대놓고 돈이야말로 여심의 만병통치약이라고 부르짖는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말이 그야말로 딱 어울릴 만큼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돈을 그만큼 많이 벌어야만 한다는 현실을 이제 한국사회는 익혀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돈을 대하는 태도는 어쩐지 불안하고도 이중적이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시장지상주의를 온몸으로 받아낼 자신도, 피해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지난 2010년 '정의'라는 화두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새 저서로 다시 찾아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이란 다소 단호한 제목의 이번 저서는 우연인 듯 필연인 듯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이 불안함의 맥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에 수많은 사례와 예시, 가정을 통해 낱낱이 분석해내는 통찰력은 여전하다. 선착순 논리를 대체하고 있는 돈의 새치기와 최근 일반화되고 있는 인센티브의 한계, 시장이 밀어내고 있는 도덕과 규범에 대해 집중 분석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돈은 재화에 흔적을 남겨 가치를 변색시킨다고 주장한다. 시장이 가치 결정의 주요 근거로 인식되면서 사람들의 태도와 신념을 하나 둘씩 변화시켜 결국엔 삶과 죽음에서도 돈의 논리를 허용할 것이라 우려한다. 그렇다고 시장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지나치게 많으면 환경이 파괴되듯, 시장주의가 지나치게 확대됐을 때의 부작용이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우습게도 책을 읽어나갈수록 '아직 한국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적어도 야구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멘트마다 후원사의 이름을 듣지 않고 있고, 기업들이 종업원의 죽음에 배팅해 몰래 보험을 들고 있지 않은데다, 돈을 받는 대가로 자신의 이마에 기꺼이 광고 문신을 하는 풍토는 아직까지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시장지상주의에 대해 우리도 기준을 고민하고 나름의 방어막을 준비해야겠다는 위기감도 엄습한다.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어떤가? 돈의 활개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며 적어도 무엇만큼은 돈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은가? 혹은 어떻게 돈이 살 수 없도록 만들 것인가. (골치 아프고 어렵고 부담스러워도) 이제 우리가 대답해야할 차례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