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권재진 법무부장관이 11일 퇴임했다. 역대 62대 장관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경한, 이귀남 장관에 이어 세 번째이자 마지막 법무부장관이다. 날짜로는 578일간 재임했다.
법조계에서는 권 장관을 '역전의 사나이'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2009년 서울고검장 당시 강력한 총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최종인선에서 두 기수 후배인 천성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밀려 자진 퇴임했을 때만도 그의 컴백을 점치는 사람은 적었다.
그러나 그는 퇴임한지 두달 뒤인 9월 화려하게 재기했다. 새로 둥지를 튼 곳은 검찰이 아닌 청와대였다. 천 후보자 인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정동기 민정수석 후임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후 그는 최측근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오른팔 역할을 했다.
2011년 8월 그는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됐다. 야당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그의 임명을 강력히 비판했다.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그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한다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같은 이유로 민정수석이나 청와대 참모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는 것은 역대 정부를 통틀어 드문 일이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파헤쳐졌다. 우선 당시 영부인 김윤옥 여사와의 친분이 검찰-청와대 요직은 물론 장관까지 올라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누님 인사’라는 말까지 돌았다.
대구출신인 권 장관이 김 여사와 한 동네 살았고 김 여사가 “재진아”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는 게 그 근거다.
그러나 그는 “초등학교 졸업 전 10년 정도 한 동네에 살았던 것은 맞지만 특별히 남들보다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 외에 아들 병역혜택문제와 위장전입 문제 등도 제기돼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명박 前대통령과 권재진 법무부장관
취임 후 그는 ‘공정한 법집행’과 ‘따뜻한 법치’를 기치로 내세우고 의욕을 보이며 장관직을 수행했다. 2013년 신년사에서는 그는 ‘역대 가장 깨끗한 총선과 대선’이 치러질 수 있도록 공정하게 법을 집행했다고 자평했다.
저축은행, 원전, 의약품 거래 등에 구조적으로 숨어 있던 대형 비리들을 척결하였고, 서민을 울린 불법사금융을 엄단한 것도 높이 평가했다. 성범죄와 흉악범죄를 막기 위한 노력도 나름대로의 성과로 꼽았다.
권 장관이 또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국민과의 소통이다. 페이스북 등 SNS를 자주 이용하는 그는 페이스북에만 1600명에 가까운 ‘친구’를 가지고 있다. 정책의 소개나 무거운 말 보다는 소소한 사적 행복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일면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검찰수사에 이어 특별검사까지 수사를 진행하면서 사건발생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권 장관은 배후로 끊임없이 지목됐다.
여기에 김병화 대법관후보자 낙마, 내곡동사저 의혹 등 청와대와 검찰에게 곤혹스러운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그의 개입여부에 시선이 쏠렸다. 특히 검찰출신인 김 후보자에 대한 사퇴요구가 거셀 때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김병화 후보자는 대법관으로서 손색없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12년 국정감사 때에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단의 ‘정치인 뒷조사’ 의혹이 전면에 떠오르면서 의원들과 각을 세우고 몇 차례에 걸쳐 감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또 같은해 말에는 이른바 ‘검란’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총장 없는 검찰’을 만든 책임론에 휩싸이는 등 이임 전까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권 장관은 이임식 당일 오전 6시쯤 그의 SNS 게시판에 “이임식이라고 쓰고 자유라고 읽는다”라고 적었다. 파란만장했던 장관직을 끝내는 소회가 한눈에 읽히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과연 자유로울지는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나름대로의 소신에 따라 민정수석과 장관직을 수행한만큼 그 자신이나 이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과 고소·고발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한달도 안된 상태에서 벌써 ‘내곡동 사저의혹’ 사건 등 3건의 고소고발사건이 검찰에 접수됐다.
권 장관 역시 이 전 대통령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권재진 현 법무부장관,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하고 주도한 혐의로 지난 5일 고발당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