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일본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대로 급락했다. 2009년 4월 이후 4년여만의 일이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독일 등 주요 20개국(G20)회원국들이 엔저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어 당분간 엔화 약세 움직임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향후 가파른 엔화 하락이 일본 경제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달러·엔 환율 4년 만에 100엔 돌파..아베 '덕분'
9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100.56엔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2009년 4월8일 이후 4년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도교 외환시장에서 이날 오후 1시 58분 현재 달러·엔 환율은 101.02엔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날 엔화 가치 하락은 일차적으로 고용지표 호조에 따른 달러 강세 영향이 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고용지표 개선으로 엔화 매도·달러화 매수 흐름이 우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달러·엔 환율은 2009년 4월 달러당 100엔을 밑돈 이후 강세가 지속됐다. 특히 유로존 위기가 본격화된 2011년 10월에는 달러당 75.32엔으로 엔화 가치가 역대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후에도 80엔대를 유지했던 엔화에 전환점을 마련해준 것은 아베정권의 금융완화 정책이다.
지난해말 취임한 아베 신조 총리는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해 강력한 부양정책을 펼칠 것을 강조해왔고 구로다 일본은행(BOJ)총재는 이에 부흥하듯 공격적인 금융완화를 펼쳤다.
이에 지난해 11월 달러당 79.91엔이었던 달러·엔환율은 불과 5개월 만에 약 20% 뛰면서99엔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이후 100엔 돌파를 앞두고 상승세가 주춤했지만 이날 고용지표 호재를 바탕으로 한 달러 매수세가 강화되면서 엔화가치는 결국 100엔의 벽을 뚫었다.
바실리 세레비아코프 BNP 파리바 환율 스트래티지스트는 "시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앞당겨졌다"면서도 "미국 경제 회복과 BOJ금융완화 등을 고려하면 달러·엔 환율 100엔 돌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100엔 돌파한 달러·엔환율..날개짓 어디까지
달러대비 엔화 환율이 100엔을 돌파한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는 만큼 시장의 관심은 벽을 뚫은 엔화 환율이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지에 쏠려있다.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은 미국 경제 회복으로 달러가치가 상승해 연말까지 달러대비 엔화 환율이 104엔선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1년 후 달러·엔 환율 전망치를 기존 95엔에서 105엔으로 대폭 올렸다. 씨티그룹의 3개월 전망치도 달러당 99엔에서 107엔으로 상승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달러·엔 환율이 3개월 뒤 105엔, 12개월 뒤 120엔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으며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연말 예상 환율을 달러당 105엔으로 잡았다.
오가와 마사키 씨티뱅크 수석FX 스트래티지스트는 “100엔 돌파를 앞두고 환율이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다”면서 “100엔 돌파를 계기로 지금까지 투자를 꺼렸던 참가자들이 100포지션을 명확히 하게 될 것이며 큰 조정 없는 상승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파른 엔화 가치 하락..약(藥)일까 독(毒)일까
일각에서는 달러·엔 환율이 100엔대를 돌파한 것을 두고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외신은 "수출업체들은 가격경쟁력이 강화되겠지만 반대로 수입물가 상승 등으로 생산성이 저하될 것"이라며 "엔화 약세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어 수출이 회복해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개인 소비가 침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헤지펀드계의 거물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이달 초 경제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행의 양적완화가 엔화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규모 양적완화로 일본 투자자들이 엔화 약세를 피해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기 시작하면 엔화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현지언론도 "가파르게 진행되는 엔화약세가 수출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경기회복을 동반하지 못하는 자산버블과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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