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300만 농민의 생계가 걸린 쌀 시장 개방을 결정할 시기가 임박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뒷짐을 진 모습이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동향을 볼 때 계속 시장을 닫는 게 어려울 전망이지만, 정부 등은 지방선거를 의식해 쌀 시장 개방 문제를 흐지부지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7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9월까지 쌀 관세화 여부에 대한 우리 측 입장을 WTO에 전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6월 중으로는 농업계 등 국내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을 거쳐 쌀 시장 개방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5년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20년간 쌀 시장을 닫았지만 최근 관세화 유예에 실패한 필리핀을 보면 추가적인 관세화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필리핀은 1995년부터 2012년까지 쌀 시장을 닫았고 이후 5년간 관세화 유예를 요청하며 다른 품목에서의 관세 인하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WTO 회원국들은 이를 거부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20년간 쌀 관세화를 유예했지만 더 이상의 현상유지는 국제사회에서 수용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면 수입 쌀에 대한 관세율을 얼마로 하고 관세는 어떻게 책정할지, 시장 왜곡을 막고 수입 쌀의 국내 시장 교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을 논의해야 하지만 현재 정부의 논의 상황은 몇 년째 한발짝도 못 나간 모습이다.
박수진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앞으로 주요 쟁점에 대한 설명회와 토론회, 공청회 등을 진행해 정부 계획을 확정하겠다"고 말했지만, 쌀 시장 개방 일정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시간은 3개월도 채 안돼 논의 자체가 요식행위에 그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정부와 국회는 서로 최종 책임을 피하자는 태도다. 정부 내에서는 농식품부와 산업부가 서로 시장 개방 여부 결정 주체와 협상 주체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고, 행정부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동의 절차를 밟겠다지만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안 되고 있기 때문.
이에 정부가 쌀 시장 개방을 기정사실로 했지만,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선거의 표심을 의식해 시간만 끌고 있다는 주장이다. 300만 농심(農心)이 좌지우지되는 선거를 코앞에 둔 정부가 쌀 관세화 유예라는 민감한 문제를 섣불리 건드릴 리 만무하다는 것.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쌀 관세화 주장 외에 그 어떤 대안도 못 만드는 것은 협상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이 문제가 쟁점화되는 것만 피하자는 식으로 농민의 생계에 대한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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