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 국가간 장벽이 낮아지면서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고 있다. 인건비와 법인세 등이 낮은 국가를 찾아 유리한 곳에 본사와 지사를 재배치하는 전략에서다. 때문에 자국 내 위치한 대기업들의 '해외로 떠날 수 있다'는 엄포가 고용창출을 꿰하는 정부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법·제도 등을 대기업들에 유리하게 바꿔가며 이들을 붙잡아 둔다. '제 기업 챙기기'는 '파워'가 센 나라일수록 더 노골적으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방법이 상대적으로 '약한' 해외기업에 자국 경쟁법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국가마다 '거래관행'과 '공정성' 등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른 점을 악용해서다.
일례로,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관행처럼 굳어져 있는 '인맥영업'이 서방에서는 담합처럼 비춰질 수 있다.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앞서 '친밀감'부터 형성해야 한다고 보는 동북아시아 '경영문화'가 비용·편익 논리의 실질성을 강조하는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먹히지' 않는 것이다.
실제 한국 기업이 최근 5년 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 담합 혐의로 부과 받은 과징금은 2조여원. 근 20여년 동안 미국이 담합 과징금을 물린 상위 1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한국 기업도 LG디스플레이·대한항공·삼성전자·하이닉스 등 4개나 된다.
문제는 해외 경쟁당국들이 앞에서는 '공정성'을 말하면서 뒤로는 자국 기업 챙기기에 적극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나몰라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이익의 많은 부분이 '딴 나라 주머니'로 돌아 가고 있지만, 공정위는 제대로 된 코멘트 하나를 내놓지 못 하고, 구글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한국 내 횡포에도 뒷짐 지고 있는 것.
최근 중국 경쟁당국이 중국 내 판매되는 미국 기업 제품의 가격인하를 유도하고자 이들에 차별적으로 조사,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 됐다.
뉴욕타임즈·블룸버그·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지난 4~5일에 걸쳐 아우디·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중국 가격이 미국 현지에서보다 훨씬 비싸다는 이유로 중국 경쟁당국이 이들의 중국 사무소에 전격 조사를 나섰다는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미국에서 399달러에 팔리는 애플사의 아이패드 미니가 중국에서는 470달러에 팔리고 있다는 등의 사실이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면서 중국의 '화'를 돋구었다는 게 이들의 풀이였다.
그런데 중국 경쟁당국의 이같은 '목적 지향적' 경쟁법 집행은 한국 기업에까지 미칠 수 있어 우려가 제기 된다. 중국 영자지 차이나데일리의 지난 13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경쟁당국은 현재 국내·외 자동차 업체 1000여개를 대상으로 조사중이다. 조사는 앞으로 통신업계 등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한국 공정위 관계자는 "국가마다 고유 경쟁법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중국의 집행에 대해 언급하기 곤란하다"며 "국가주권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이른바 '세계의 공정위'라 불리는 국제경쟁네트워크(ICN)에서 부의장국의 중책을 맡고 있는 한국 공정위에 걸맞지 않는 대응이다.
ICN은 기업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 국가별 주관적 경쟁법 집행을 줄이고, 경쟁법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각국의 경쟁당국은 나라를 대표해 자국 경쟁법의 '시장지배력'을 늘리기 위해 이곳에서 치열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 세계 경쟁법 흐름을 주도해 자국 법을 최대한 많은 국가에 이식시켜 해외에 진출한 '제 식구'들의 법적 '리스크'를 줄여주기 위해서다.
미국은 이미 독일과 일본 등에 자국의 경쟁법을 수출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상태다. 지난 2009년에는 민주당 Earl Blumenauer 의원 등 22명 의원이 J. Leibowiz 미 공정위원장에 EU 집행위의 미국 기업에 대한 법집행에 강한 우려를 표하면서 미국식(American way) 경쟁법 집행의 세계적 확산 필요성을 강조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한국 공정위는 당시 이를 두고 미국이 의회적 차원에서 경쟁법을 통한 자국기업 보호를 현실화했다고 평했다.
한국 공정위도 경쟁 선진국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한편 개도국에는 경쟁법·정책 기술지원 사업을 실시해 견제에 나섰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더구나 공정위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상 어려움 등을 이유로 해외기업 제재에는 오히려 늑장을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례로, 지난달 14일 애플 앱스토어 불공정약관을 시정하면서 같은 약관이 그대로 적용되는 맥 앱스토어와 아이북스토어 관련 약관은 손도 대지 않았다. 경실련이 '모바일 이용자 약관'만을 심사청구했다는 이유에서다. 본사 대리인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로 약관 시정에 1년 3개월이나 소요한 것을 감안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국내 사업자인 KT, SK플래닛, LG전자, LG유플러스에는 이보다 4개월 앞서 시정이 완료됐다.
경실련은 이에 애플의 수리 약관을 공정위에 추가 고발했다. 연이은 불공정거래 논란에도 애플코리아는 "모든 권한이 본사에 있다"며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사는 본사가 시키는대로만 하지, 자신들만의 정책을 세우거나 실행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변화가 기대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 경쟁당국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처사로 보인다.
◇ICN 조직도(자료=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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