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불공정)②셀프시정안, 이 법에만 걸려라?
2014-08-12 15:17:39 2014-08-12 15:22:10
[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 동의의결제 도입 3년. 현재까지 불공정거래 업체 두 곳이 이 제도를 활용해 '셀프시정'을 했다. 
 
동의의결제는 불공정거래 혐의로 적발된 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는대신 '자진시정안'을 마련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불공정 사항을 신속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업체측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공정위의 제재를 기다리느니 자발적 시정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해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등 제도 활용에 따른 이득이 많다.
 
그러나 공정위는 동의의결로 처리된 사안들과 관련해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의의결을 통한 사건 처리를 늘리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지만, 국내 동의의결제에 아직 모순이 많기 때문. 처리 건수를 늘리기에는 아직 보완할 점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현재까지 공정위 소관 법령 총 11개중 2개에만 동의의결제가 도입돼 있다. 지난 2011년 공정거래법에 가장 먼저 도입된 뒤 올해 1월 표시광고법에도 동의의결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동의의결제가 활용될 수 있는 불공정거래 사건이 위 2개 법률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에 제한돼 있어 문제다. 유사한 불공정행위더라도 공정위가 애초에 어떤 법을 적용해 처벌하느냐에 따라 업체측에서는 동의의결제를 활용할 기회를 처음부터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4월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적발된 가격비교 사이트 4곳은 동의의결제를 활용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반면 앞서 비슷한 혐의를 빚은 네이버와 다음에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국내 최초로 동의의결제 활용을 승인받아 공정위의 직접적인 제재를 피한 첫 사례를 만들 수 있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전자상거래법 사건은 동의의결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며 "공정거래법 외에 표시광고법에도 동의의결제가 도입돼 있지만 표시광고법에서 동의의결이 적용된 사례는 아직 없다"고 밝혔다.
 
2개의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4개 가격비교 사이트는 광고 상품을 '프리미엄', '스페셜' 등으로 표시했고, 네이버와 다음은 광고비를 받은 업체의 링크를 검색시 우선적으로 나타나게 한 뒤 이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다. 사실상 거의 같은 위법 행위다.
 
법 적용이 모호한 것은 차지하더라도 4개 사이트가 동의의결제 활용 가능성을 박탈 당했다는 점에서는 '절차상 불공정'했다.
 
더구나 전자상거래법 위법 업체가 동의의결제를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은 당초 동의의결제가 도입된 취지와도 맞지 않다.
 
공정위는 "사건처리기간을 단축하고 특히 IT 등 변화가 빠른 신성장분야에서 신속하고 유연한 해결을 도모하고자 동의의결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전자상거래 분야야말로 변화가 급속한 업계다.
 
신속한 불공정 사항 해소와 같은 장점이 없다면 굳이 업체측의 셀프시정안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 공정위는 동의의결제 활용이 세계 경쟁당국의 '스탠더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하지만 해외의 주요 동의의결 사례들 역시 IT업계 관련 건이 대부분이다.
 
미국 공정위가 지난 2013년 7월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 건을 심사할 때 동의의결을 적용한 사례, 2010년 11월 인텔이 컴퓨터 제조사들을 상대로 타사 제품을 쓰지 않도록 부당 유인한 행위에 적용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인 조아퀸 알무니아(Joaquin Almunia)도 "변화와 혁신이 지속되는 시장에서는 신속·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과징금 부과를 위해 긴 과정을 거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는 동의의결제를 긴요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업계가 변화가 많은 시장에 제한돼 있음을 역설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의의결제가 신속한 처리를 실제 가능케 했을까?
 
(자료=공정거래위원회)
 
동의의결이 국내 최초로 적용된 네이버와 다음 건은 공정위의 직권조사가 시작된 지 8개월 만에 최종 동의의결안이 확정되며 마무리 됐다. 공정위의 평균 사건처리기간(대략 7개월)보다 오히려 긴 시간이 걸렸다. 최근 공정위 집행 건중 가장 사회적 관심이 높았던 남양유업 건의 경우 약 두 달만에 제재 조치가 결정되기도 했다.
 
두번째이자 마지막 동의의결 건은 SAP코리아의 고객·협력사에 대한 불공정거래 건이다. SAP코리아는 지난해 11월 6일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약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확정안은 아직 안 나왔다.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도 여전히 위원회에 계류중인 것.
 
공정위 관계자는 "SAP코리아 건이 언제 다시 위원회에서 논의될지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31일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이 공정위의 사건처리가 너무 늦다고 지적한 데 대해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6개월이 지나면 장기사건으로 분류하는 기준을 만들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노 위원장의 말대로라면, 현재까지 집행된 모든 동의의결안 건이 '장기사건'인 셈이다.
 
동의의결과 협의 당사자만 다른 분쟁조정(공정거래조정원 소관)이 올해 상반기 기준 평균 35일 소요된 점과 비교하면 훨씬 길다. 분쟁조정은 전년에 견줘 처리기간을 8일이나 앞당기기도 했다.
 
국회 역시 공정위의 동의의결제 시행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달 29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공정위의 독점적 동의의결제 집행권한이 제도 운영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며 "견제장치 없이는 기업만 면죄부를 받게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공정위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쫓아가기 앞서 동의의결 적용 '법률 간 차별'의 벽부터 허물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에 더 귀 기울이는 한편, 처리기간 단축방법을 모색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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