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중소 가전업계를 담당하며 모뉴엘에 출입했던 담당기자로서 독자들을 대할 낯이 없다. 메일함에 쌓여있는 모뉴엘의 보도자료와 그들 말만을 믿고 아무 검증없이 '잘한다'를 남발했던 홍보 일색의 기사들은 기자를 허탈하고도 부끄럽게 만든다. "모뉴엘은 비상장 회사라 사업보고서나 분기 및 연간 실적 공시를 하지 않아 회사가 말하는 것만을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구차한 변명조차 입 밖에 내기 어렵다.
모뉴엘이 비상장사라고 해서 언론이 그 책임에서 비껴갈 수 있을까. 언론의 전제는 비판과 견제, 감시로부터 출발한다. 이를 위한 대전제는 사실 여부의 확인이다. 이것이 존재이유이며 언론의 책임이다. 모든 것이 지켜지지 않았다.
법정관리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야 철 지난 감사보고서를 따져보며 '아차' 싶었다. 연결현금흐름표만 자세히 들여다 봤어도 석연치 않은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손댈 수 있지만 '현금흐름'은 상대적으로 조작하기 어렵다. 이를 토대로 꼬치꼬치 캐묻고 문제를 제기했다면 이렇게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되는 희대의 사기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언론의 책임이 더 커지는 대목이다.
뒤늦었지만 복기는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기자라는 본업에 충실하지 않았던 점은 두고두고 괴롭힐 자책이다. 그랬다. 스마트폰을 제외하고 모든 가전 분야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모뉴엘만 이상하리만치 매년 승승장구했다. 어쩌다 "매출은 느는데 시장에서 모뉴엘 제품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질문에 "우리나라만 그렇지, 해외에서는 공급계약이 잇따르고 있다"는 회사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다.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는 제품들은 하나같이 '돈' 이 되기 힘든 제품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불찰이었다.
10여개 금융기관 뿐 아니라 언론 역시 모뉴엘과 그를 둘러싼 반짝거리는 '후광'에 눈이 멀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이들의 말과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재생산해낸 언론이야말로 지금의 사태를 키운 장본인 같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벌써 모뉴엘 사태로 인해 소비자들과 투자자, 협력업체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현장에서 전해져 온다. 자의든, 타의든, 모뉴엘의 사기극에 동조한 것 같아 부끄럽다. 통렬하게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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