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재벌가 3세들의 책임경영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창업 2세대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3세들이 경영 전면에 서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경영상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등기임원직은 여전히 회피 대상이다.
특히 재계를 대표하는 범삼성가의 경우 총수 일가들이 등기이사 등재를 하지 않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도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이 부회장은 최고영업책임자인 CCO의 직함은 갖고 있으면서도 등기 여부에는 미등기 이사로 포함됐다. 오는 13일 있을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직 회피는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 회장은 2008년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특검을 받은 후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고, 2010년 경영에 복귀한 후에도 등기이사직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었다. 회장 취임 이후 주요 외신에서 이 회장을 가리켜 '은둔의 제왕'으로 묘사한 이유다.
이 부회장은 본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에도 이사 등재를 하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 형제 중에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하게 호텔신라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다. 막내인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은 미등기임원으로 제일기획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이 부회장의 경우 부친이 오랫동안 병석에 있는 상황에서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릴 경우 후계 선언 등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시장의 각종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범삼성가인 신세계그룹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건희 회장의 누이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신세계 주식 17.3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경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지만 미등기 임원이다. 아들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역시 2대 주주로, 실질적으로 경영을 총괄하고 있지만 모친과 더불어 미등기 임원이다.
정 부회장은 2013년 3월 등기이사직에서 발을 뺀 후 계속해서 미등기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당시 등기이사의 보수내역을 공개하는 자본시장법이 개정된 것이 정 부회장의 이사 등재를 꺼리게 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정 부회장은 올해도 등기이사직을 맡지 않을 예정이다.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에서도 최대주주와 2대주주이지만 미등기 임원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분 52.08%를 보유하고 있는 광주신세계에서도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반면 삼성그룹과 재계 수위를 다투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비교적 이사 등재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등의 등기임원이며, 장남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도 현대차를 비롯해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등의 등기임원으로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
효성그룹도 조석래 회장부터 조현준 효성 사장, 조현상 효성 부사장이 모두 효성의 등기임원으로 함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영업실장(상무)이 최근 한화큐셀 등기임원으로 등재하고 CCO의 역할을 수행키로 했다. 부친이 집행유예 기간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총수 일가의 일원으로 책임경영 전면에서 섰다는 분석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재벌 총수 일가가 책임경영을 회피하고자 비등기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연봉공개 등 규제는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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