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이 고시생들의 희망과 애환이 서린 신림동 고시촌을 테마로 전시회 '신림동 청춘展'을 연다.
'신림동 청춘–고시촌의 일상'이라는 주제로 오는 11일부터 11월 8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신림동의 흥망성쇠와 함께 해온 서울의 역사도 함께 조명된다.
1960년대 신림동 천막촌.사진/서울역사박물관
관악산 기슭에 위치한 신림동은 나무가 무성해 ‘신림(新林)’이라 불리던 일대에 의성김씨(자하동) 등 여러 집성촌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까지 만해도 그저 그런 작은 동네였다.
그러나 1960년대 서울시가 도시개발에 집중하면서 도심 무허가 주택에 살고 있던 주민들 일부가 신림동으로 떠밀려 내려왔다. 이때 들어온 주민들은 용산 해방촌, 청계천, 한강 주변, 이촌동, 공덕동 등에서 떠나온 철거민들이다. 이들은 신림동을 삶의 터전으로 일구기 위해 손발이 터지도록 일했다.
녹두거리에서 열린 자주관악제(서울대 대학신문사).사진/서울역사박물관
신림동은 1975년 2월,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가 이전·완료되면서, ‘빈민촌’에서 ‘대학동네’로 재탄생한다. 이후 1980년대 서울대학교에는 관악세대라 불리는 학생 운동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며 시민사회를 살리기 위해 몸을 던졌다. 당시 신군부 집권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면서 서울대 정문과 신림동 일대를는 최루탄이 포연처럼 휘감았다.
한 고시생이 신림동 고시학원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서울역사박물관
1990년대 고시열풍과 함께 전국 고시생들이 몰려들면서 신림동은 10여년간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지금의 모습은 이때 만들어졌다.
도림천 건너편 산등성이를 빽빽한 건물로 가득 메운 신림9동(현, 대학동)에는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90년대 주민 절반 이상이 고시생들이었고, 현주민 상당수가 고시생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상권에 종사하면서 그렇게 어울려 살았다.
신림동 고시촌의 한 고시식당에 걸려있는 식당쿠폰.사진/서울역사박물관
그러나 2008년 로스쿨 도입과 2017년 사법시험 폐지 예정으로 고시생들이 떠나면서 다시 외로운 마을로 바뀌고 있다. 그 많던 고시생들이 떠난 자리를 취업준비생, 외국인유학생, 직장인, 저임금 노동자, 기초생활대상자 등이 채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림동은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서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 됐다. 타 동네에 비해 저렴한 집세와 생활물가 때문이다. 신림동은 그렇게 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또 다른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의 한 고시원 모습. 고시생들이 떠난 이곳에는 취업준비생, 저임금 노동자 등이 살고 있다.사진/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번 전시회에서 고시생의 일상을 사진과 영상 등 관련 유물을 통해 관람객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해 '신림동 고시촌' 일대를 그대로 연출했다.
고시촌 곳곳에서 펼쳐지는 고시생의 24시간 수험생활, 고시공부를 계속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고시촌 괴담, 선택의 기로에서 남거나 떠나는 고시생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신림동 고시촌 언덕길.사진/서울역사박물관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8시, 토·일·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 1일은 휴관한다.
문의사항은 서울역사박물관(전화 724-0274, 홈페이지 www.museum.seoul.kr)으로 문의하면 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신림동 청춘展' 포스터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