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용현기자] 아파트 단지 부녀회의 이기주의가 또 기승이다. 지난해 말부터 아파트값 상승세가 주춤해지자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가격하락을 막기 위해 부녀회를 중심으로 가격 담합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일부 단지에서는 아파트 이미지에 손상을 주는 행동 금지령이 다시 내려졌다.
경기 남양주시 지금동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 달 84㎡ 면적의 한 아파트 매물을 급하게 팔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한 달 전 시세대로 나놨던 매물이지만 집주인의 사정으로 급하게 가격을 2000만원이나 낮췄다. 이에 A씨는 인터넷에 등록한 매물의 가격을 낮춰 판매에 나섰지만 이틀 후 매물등록을 취소했다. 시세보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의 매물이 나온 것이 알려지면 아파트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입주민들의 항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최근 1년 동안 주변 대부분 단지들에서 가격이 3000만원 정도는 올랐는데 요즘 상승세가 주춤해지면서 더 민감해진 것 같다"며 "동네에서 계속 부동산을 운영해야하고, 경쟁 중개업소가 워낙 많아 입주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단지 부녀회는 최근 입주민들의 가격 하락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지면서 주변 부동산 관리에 나섰다.
부녀회 임원으로 있는 B씨는 "인터넷을 통해 싼 물건을 내놓을 경우 가격을 확인하는 사람이 많아 가격 하락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워낙 사회문제로 이슈가 많이 된 문제라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가만히 있을 경우 순식간에 재산이 1000만원~2000만원 떨어지기 때문에 주변 중개업소에 급매물 등의 표현은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한 단지 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택시장에서 가격 부침이 심할 경우 흔히 나타나는 문제로, 가격 하락기에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정찬 가온AMC 대표는 "아파트값이 오르거나 내리는 추세가 이어질 때 가격 상승을 부추기거나 하락을 막기 위해 그동안 공공연하게 나타난 문제였다"며 "과거 이런 행위에 대해 사회적 지탄이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현수막을 거는 등의 노출을 삼가는 대신 다수가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아파트 싸게 팔지마세요'라는 문구로 논란이 됐던 현수막. 시세 가격담합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이어지자 최근에는 집단 항의 등의 방법을 이용해 시세 하락을 막는 단지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중개업소 매물 시세에 관여하는 것 뿐 아니라 외부 미관을 해쳐 아파트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는 등 단지 내부 관리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공무원 강 모(38·남)씨는 최근 관리사무소로부터 '아파트 외관이 지저분해 보여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으니 빨래를 아파트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강 씨는 "지난해 세종시로 이사해 1년 정도 살고 있는데 최근 고향에서 어머니께서 며칠 머물면서 이불 빨래를 베란다에 널었는데 이런 연락을 받게 됐다"며 "그런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부녀회에서 결정한 사항이라며 지금 항의가 들어왔으니 조치해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blind2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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