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요즘은‘콜라보’(collaboration·협업)가 대세다. 지난 6일 출시돼 일명 ‘속초대란’을 일으킨 ‘포켓몬 고’의 열풍이 최근 가장 '핫' 한 사례다.
‘포켓몬 고’는 닌텐도 포켓몬컴퍼니 소유의 지식재산권과 구글 나이언틱 랩스(Niantic Labs)의 증강현실(AR)을 ‘콜라보’한 게임으로, 지식재산권과 증강현실 기술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만들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예로써 향후 지식재산권 분야의 발전 방향을 전망케 한다.
그런데 ‘포켓몬 고’ 열풍을 보면 게임 분야를 비롯해 정보통신 분야의 강국으로 손꼽히는 우리나라에서 왜 이와 같은 서비스나 제품을 선도적으로 성공시키지 못할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오히려 최근‘포켓몬 고’의 성공에 기대어 관련업계가 이와 유사한 게임을 발표한다는 소식이나 증강현실기반 게임은 우리가 원조였다는 기사들이 쏟아지는 것을 볼 때 그래도 게임은 우리나라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나르시즘적 인식이 느껴져 우려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산업, 즉 시장은 정부의 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향식으로 이루어지는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이 그 원인인데, 이는 시장의 필요와 정부 정책의 제공이 일치될 수 있어야 최대의 효과를 도출할 수 있다. 지식재산권 분야에 있어서도 기존에는 지식재산권의 창출에 주안점을 둬 우리나라에 관련 인프라를 확대하는데 정부의 정책적 관심이 있었다. 최근에는 시장의 변화에 따라 창출된 지식재산권을 활용하는데 정책적 주안점을 두고 있어 시장의 필요에 따른 정책변화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우리나라가 창조적 산업의 발전이 늦어지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식재산권 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그 한계가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 관련 산업, 즉 창조적 산업에 내재적 규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 정책은 특허권·상표권·디자인권 등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등으로 구분돼 해당 권리에 관한 정책이 특허청 및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분산돼 있다. 이런 구조 체계는 산업에 관한 권리와 문화예술에 관한 권리로 구분되는 전통적인 지식재산권 분류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산업에 관해서는 산업관련 부처가, 문화예술에 관해서는 문화예술관련 부처가 담당하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간 관련산업의 흐름을 볼 때 이러한 전통적 분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는 지식재산권 각 권리(특허권 등)의 경계가 서로 중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식재산권을 각 권리 단위로 다루기보다는 제품 및 서비스 단위로 다양하게 융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 환경의 전통적 칸막이 안에서 각각 이루어지는 산업재산권 및 저작권 등의 정책구조는 시장의 전체를 읽을 수 있는 시각을 정책입안자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정책입안 뿐만 아니라 지식재산권 정책에 관한 공적 연구와 사업 역시 각 부처의 논리에 따라 양분돼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요구하는 지식재산권 정책의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각 권리 단위에 기초해 입안된 정책들이 상호 충돌되거나 사각지대를 형성해 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정적 규제로 작용하게 된다.
한 예로 현재 각 지역에는 지식재산을 활용한 창조적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센터가 구축돼 있어, 해당 지역의 기업은 특허권 등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문제를 구분하지 않고 ‘지식재산권 문제’로서 센터에 문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지식재산권 문제가 아닌 분야별로 산업재산권에 관한 고민과 저작권에 관한 고민으로 분리돼 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융합적 관점에서 지식재산권 전략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특허권 혹은 저작권 중 하나를 택하는 방식의 경직된 칸막이식 관리는 최근 지식재산권 산업에 적절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해 결국 시장에 불확실성만을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결과 ‘포켓몬 고’와 같이 지식재산권의 융합적 활용이 전제되는 혁신적 서비스의 창출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정부 역시 별도로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설립해 지식재산권 정책에 대한 콘트롤타워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나 설립 후 5년이 지난 위원회는 단순한 협의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유명무실한 상태로 설립목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콜라보, 즉 기술과 콘텐츠 등의 융합이 전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우리나라가 선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지식재산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정책적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와 같이 구시대적 산물인 전통적 칸막이 규제 하에서는 숲을 볼 수 없다.
‘포켓몬 고’의 열풍은 단지 증강현실게임이 성공했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나라에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등을 포괄하는 융합적 대응 정책 주체의 존재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더 뒤처지기 전에 지식재산권을 통합관리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전담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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