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정경유착)②공고화…경제권력 부패의 만성화
정권 바뀌어도 재벌은 건재…비결은 '정책 특혜'
2017-02-24 07:00:00 2017-02-24 10:05:54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신군부 시절 정경유착은 만성화됐다. 특히 음성화의 길을 찾았다. 정책집행 과정과 금융거래 등이 민주화 요구에 다소나마 투명성을 띠면서다. 권력은 정치자금의 필요성이 커졌고, 재벌은 각종 특혜로 성장한 과실을 잊지 못했다. 재벌은 정치권력과의 우호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불법 정치자금을 댔다. 강요와 압박도 있었지만, 본질은 서로간의 이해 충족이었다. 정책적 특혜가 이어졌고, 과실의 일부는 다시 정치권력으로 돌아왔다. 민주화 시대로 가면서 재벌은 ‘경제권력’으로 입지를 달리했다.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가 굳어지면서 재벌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장도 위력을 발휘했다. 파이만을 강조하는 성장논리 앞에 재벌 개혁론이 설 자리는 없었다. 정경유착 비리 적발과 형식적인 사과가 반복되는 만성화가 한국사회를 휘어잡았다. 최순실 게이트는 그렇게 잉태됐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는 정권의 정당성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정의사회 구현’을 기치로 내걸었다. 1980년 6월18일 김종필, 이후락 등 부정축재자 9명 명단을 발표하고, 7월9일 부패공직자 숙청, 8월4일 삼청교육대 설치 등에 나선다. 재벌 규제도 물꼬를 텄다. 1980년 12월31일 공정거래법이 제정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는 대규모 기업집단 제도와 출자총액제한제도도 처음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물 밑으로는 재벌들로부터 여전히 뒷돈을 챙겼다. 전경련이 정치자금을 모아 정권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상호 불법이 자행되면서 밀월관계가 재형성됐다.(2016년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도 흐름이 같다.) 때문에 재벌 규제가 수립돼도 예외조항과 단서조항 등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80년대 이후에는 재벌이 해외에서 자금을 직접 조달할 수 있고 금융권에도 진출해 대출 배정이 필요 없어졌다”며 “하지만 정책이라든지 독점의 보호, 해외 경쟁으로부터 차단 등 다른 차원의 정경유착 특혜 배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치자금 상납은 6공 때도 자행됐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10년간 전경련을 이끌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92년 정치 참여를 공식화하면서 “박정희 대통령 때는 한 번에 5억원씩 내다 마지막에는 20억원씩 냈고, 전두환 대통령 때는 추석 때 20억원, 연말에 30억원을 냈다. 6공 들어서는 5공 때와 같이 20억원 내지 30억원씩 냈고, 이후 50억원을 낸 뒤 1990년 말에는 마지막으로 100억원을 냈다”고 폭로했다. 정권 비리를 옭아매면서 재벌들도 노골적으로 변했다. 공정거래위원회 폐지 등 정책에까지 뛰어들었다. 전경련이 재벌 간에도 경제력 격차가 큰데 똑같이 규제한다고 불만을 제기하자, 노태우 정부는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를 기존 자산 4000억원 이상에서 자산 순위 30위까지로 완화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정경유착의 양태도 달라졌다. 사회적 감시기능의 강화로 재벌은 유착관계에 신중을 기했다. 때문에 대통령과 재벌이 직접 유착된 증거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 대신, 권력자 주위 실세들과 연루된 비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2월27일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자신과 가족의 전 재산을 공개하고 “일체의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도 이어져 과다 재산 보유로 도덕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같은 해 8월12일 김영삼 정부는 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로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정화의 바람이 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정경유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한보 사태에 아들 김현철이 연루돼 임기 말 민심 이반을 경험해야 했다. IMF는 국가 부도 원인으로 재벌들의 문어발 확장과 이를 알면서도 방조한 정경유착을 지목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외환위기 수습과 기업 구조조정 등 국가 비상상황에 정경유착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정치와 경제가 점점 투명화되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도 잠잠한 편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낙수효과’ 이론을 앞세워 법인세 인하, 각종 규제 완화 등 친대기업 정책이 늘어났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세금 감면, 금융 특혜, 인허가 배정 등을 비롯해 수출 대기업은 혜택을 받지만 역으로 물가가 올라 서민들이 고통을 받는 고환율 정책 등이 오랫동안 시행돼 왔다”며 “MB 시절에 가장 강력하게 시행됐다”고 말했다. 규제완화와 고환율 등 정책적 뒷받침이 재벌을 떠받들었다.
 
 
재벌이 끌어다 주는 비자금은 정권이 바뀌어도 끊이질 않았다. 특히 삼성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삼성은 전두환 정권에 드러난 것만 총 220억원의 정치자금을 바쳤다. 현대 220억원, 동아 180억원, 대우 150억원 등 현대그룹과 더불어 가장 많은 불법자금을 제공했다. 노태우 정부 때도 삼성은 1988년 3월부터 1992년 8월까지 9회에 걸쳐 250억원을 건넸다. 이건희 회장은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돼 1996년 8월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가 1997년 10월 사면됐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그룹 2인자였던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에 각각 340억원, 30억원, 15억4000만원(총액 385억4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이건희 회장은 2004년 5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이학수 본부장은 같은 해 9월17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5월13일 사면됐다. 불법과 집행유예, 사면의 반복이었다.
 
재벌들은 직접 권력에 돈을 쥐어주는 대신 재단 출연 또는 대선자금을 대는 쪽으로 샛길도 찾았다. 1988년 전두환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나서 모금한 것이 5공 청문회에서 드러났다. 1995년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을 제공한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았다. 1995년 11월3일 전경련 회장단은 “음성적 정치자금은 내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지만, 이후에도 정치자금 스캔들은 지속됐다. 1997년 15대 대선 때는 23개 대기업이 166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세풍사건이 나라를 뒤흔들었고, 2002년 불법 대선자금에도 많은 재벌들이 연루됐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전경련은 사과와 윤리선언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사건은 되풀이됐다. 전경련은 현 정권 들어서도 대통령 비선실세가 개입한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사건에 연루되며 해체 위기를 자초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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