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대미 무역을 놓고 ‘한파’가 계속된다. 내달 7일 세이프가드가 발효되는 가운데 오는 31일에는 한미FTA 2차 개정 협상에 돌입한다. 철강 수입 억제를 위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결과도 목전에 뒀다. 미 당국의 고무줄 잣대로 조사 강도가 심해지는 자국법 독소조항은 제소 분쟁을 부추긴다. 중간선거와 지지율 반등의 필요성에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분쟁을 국내 정치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태세다.
태양광 시장은 올해 100GW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생존기를 거쳐 겨우 볕이 드는 형국이지만, 미 세이프가드가 제동을 걸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24일 “국내 태양광 기업의 올해 대미 수출이 전년 대비 최대 5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태양광 대표주자인 한화는 지난 26일 김승연 회장이 서울에서 에드윈 퓰너 미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회장을 만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한국 산업계가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우려를 표했다. 헤리티지 재단은 미국의 대표적 보수성향 싱크탱크로, 퓰너 회장은 미 정계를 움직이는 파워엘리트로 꼽힌다. 김 회장 등 민간 차원에서 저마다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우리정부는 세탁기 및 태양광 세이프가드 발효 전까지 미국이 조치를 완화하거나 철회하도록 전력할 방침이다. 세이프가드는 내달 7일 발효된다. 우리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함께 양허정지 등 관세보복 카드도 준비 중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자칫 한미간 무역 전면전으로 치달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미FTA 개정 협상까지 겹쳤다. 이달 31일부터 내달 1일까지 양일간 서울에서 2차 회의가 열린다. 양국 모두 올해 선거를 앞둬 개정 협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다. 우리 측은 상대적으로 방어적인 입장인 데다, 힘의 불균형 등 난제를 돌파해야 한다. 이슈는 자동차에 쏠리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8일 ‘한미FTA 개정협상과 한국의 대응전략’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자동차산업에 대해 수입관세 부활과 NAFTA와 마찬가지로 미국산 부품의 의무사용비율(50%) 및 역내 부가가치 기준(85%) 상향 조정을 요구할 것”으로 예측했다.
철강도 사정권에 접어들었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 수입산 철강제품의 국가안보 위협 또는 손상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만 남았다. 당초 지난해 6월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금까지 미뤄졌다. 미국 내 철강 수요 기업이 반대하고, EU 등 조치 대상국들이 보복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달 초 미 상무부의 조사 보고서가 제출돼, 90일 이내 대통령이 결정해야 하는 일정 등을 고려하면 늦어도 다음달 발표가 있을 전망이다.
미국은 가능한 모든 수입규제를 동원해 전방위 통상압박을 가하고 있다. 자국법의 독소조항에 트럼프정부의 자의적 해석이 더해져 규제의 양적 증가가 부각된다. 일례로 미국 상무부가 AFA 조항을 근거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사례가 늘었다. AFA 조항은 조사대상 기업이 정보제공 요구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지 않았다는 당국의 재량적 판단으로 징벌적 관세 부과의 구실을 제공한다. 미 상무부는 PMS 조항을 적용해 유정용강관 등 한국산 제품에 관세 폭탄을 매겼다. PMS는 시장 상황이 비정상이라는 판단만 있으면 조사대상 기업이 제출한 제조원가를 부정하고 당국 재량으로 가격을 산정할 수 있는 규정이다. 조사 발동은 쉽고 반덤핑, 상계관세보다 제재가 강력한 관세법 337조를 활용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특허 제소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은 이날 ‘2018 대미 통상 6대 이슈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민간기업의 제소 중심으로 미 수입규제 리스크가 확대되는 한편, 한국과 중국의 산업구조가 유사해 중국을 겨냥한 수입규제에 한국이 함께 노출되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특히 11월6일 미국 중간선거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통상 강경 기조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며, 취임 후 50%를 넘긴 적이 없는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해 러스트벨트 등 경쟁력이 약화된 제조업 지역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무역협회는 “기업 차원에서 제소를 당하지 않도록 수출물량을 조절하거나 경쟁기업의 제소 움직임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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