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장애인을 대상으로 열린 취업박람회가 정작 장애인을 위한 정보나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자체가 마련한 행사지만 특정 이슈에 때를 맞춘 형식적인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시는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18일 오전 10시부터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1관·2관에서 '제15회 서울시 장애인 취업박람회'를 주최했다.
구직자들은 대부분 근로 조건을 상관하지 않으며, 빠른 채용을 바랄 정도로 절박했다. 지체장애 4급인 허치영(37)씨의 경우, 병원에 잠시 입원하자, 회사가 병가를 내주지 않는 바람에 퇴사했다. 실직한 지 3개월 지나 수입이 없어 걱정이다. 허씨는 "조건이 어떻든 일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계약직이라도 정규직 전환을 노리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부스에서 면접보고 바로 채용하면 좋을텐데 몇몇 기업은 채용 시즌도 아니면서 이력서만 받아놓아 아쉽다"고 말했다.
직원 채용 면접을 내걸은 티웨이항공 업체 부스에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구직자들은 장애인 관계 단체에 많이 몰리고 대기업 부스에는 드문드문 몰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 항공사에는 오전만 20명이 면접을 봤다. 항공사 관계자는 "채용 면접이라는 문구가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며 "오후에도 몰려들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로 갈수록 점점 학생들의 수가 많아졌다. 부천정보산업고 전공과 정병현(31)씨 등 교사 3명은 작년에 졸업하고 취업 교육 과정을 거치고 있는 학생 13명을 데리고 왔다. 기업들을 상대로 면접 체험을 하기 위해서다. 바로 옆에 있는 2관에 장애학생 모의면접 부스도 거쳤지만 실전이 필요하다는 게 교사들의 판단이다.
지적장애 2·3급이 대부분인 학생들은 부스에 붙은 비교적 간단한 채용 정보도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학생들은 행사장을 빙빙 돌기만 한다는 점을 스스로 난처해하면서도 좀처럼 부스로 접근하지 못했다. 정 교사는 "알아서 부스를 찾아가라면 당황하기 때문에, 일일이 정해서 데려다줘야 한다"며 "문구를 더 쉽게 쓰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정보 누락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청각장애 진단을 받은 권(23)씨의 고모 A씨는 조카를 1관에 들여보내고 박람회 자료집을 들여보고 있었다. A씨는 "조카는 정규직을 바라는데 자료집 채용 정보에는 정규직 여부가 나와있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직자가 자료집을 받기 위해 들고 가는 구직신청서에는 정규직·계약직·시간제 등 근무형태를 체크하도록 돼있지만, 자료집과 부스에는 근무형태가 나와있지 않다.
행사를 주관한 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 측은 이같은 불편사항들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규직 여부는 기업들이 민감해하기도 하고, 구직자로 하여금 자신이 정규직이나 계약직 등이 확정됐다는 인상을 준다는 설명이다. 또 장애유형이 15가지나 있기 때문에, 부스에 있는 근무조건들을 지적장애인들에게만 맞춰주기 힘들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센터 관계자는 "지적장애인만을 데리고 박람회 같은 행사를 한다면 맞춰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18일 서울무역전시 컨벤션센터에서 주최한 장애인 취업박람회에 구직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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