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조기 대선을 통해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농단’ 등의 수식어가 붙은 박근혜정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불통의 대명사였고 ‘짐이 곧 국가’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악’이라는 오명을 입은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 구제도)만큼은 아니지만 부패한 기존정치와 제 5공화국 정치시스템의 노화에 반발해 30대의 무명 정치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지난해 5월 대통령에 선출됐다. 국회의원 한 석도 없이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의 탄생은 기존 정당들을 휘청거리게 했다. 정치문화나 유권자의 속성이 꽤 다른 두 나라이지만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염원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소통과 소탈함의 깃발을 꽂고 항해를 시작한 문재인호는 국정수행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순항 중이다. 우리와 달리 국가적 위기 없이 원래 계획에 따라 치러진 선거에서 승리한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직후 노동개혁부터 단행했다. 개혁에는 언제나 그렇듯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반발에 부딪치기도 한다. 따라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때 34%까지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주 국정 1년을 총결산하는 여론조사에서 다시 57%의 지지를 받는 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는 전임자인 니콜라 사르코지·프랑수아 올랑드에 비해 20%포인트 가량 높은 수치다. 그러나 프랑스 언론은 지난 1년 간의 마크롱을 ‘우파(de droite)’의 대통령이자, ‘거친(a la hussarde)’ 개혁자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두 정부의 시작점에는 유사한 면이 많았지만, 국정 2년 차를 맞는 자세는 확연히 다르다. 한국의 경우 국정운영 1년에 대한 결산도 없이 2년 차를 맞았다. 문재인정부는 집권 1년 차를 회고하며 인사실패를 반성하는 보도자료 정도를 내놨다. 물론 새 정부의 남북 평화외교는 눈부신 성과다. 그러나 이 성과가 새 정부의 모든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에너지와 저출산, 청년실업, 인구 고령화, 환경오염, 미세먼지 등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진전된 것인가.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 장관들의 한 해 업무능력을 평가하면 A학점인가 F학점인가. 우리는 좀처럼 알 길이 없다.
프랑스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1주년을 맞이하면 총결산을 하고 장차관들이 그간 보여준 능력을 평가해 개각을 단행한다. 이는 프랑스 정치의 ‘관례(de courtoisie)’이며 집권 2년 차를 시작하는 신호탄이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이 전통을 어길 수 없다. 그는 작년 대선 기간 프랑스 일요신문(JDD)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만약 대통령이 되면 매년 장관들이 계속하여 정부부처를 끌고 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평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각료 중 15명을 재임용하고 나머지 반은 새로 기용해 2년 차를 맞이했다.
지난 주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은 마크롱 내각 첫 돌을 맞아 장관들에 대한 평가가 곧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한 측근은 “카드 패를 다시 친다는 생각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 측근은 정치를 축구에 비유해 하프타임에 피곤한 선수를 교체할 줄 알아야 함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마크롱을 위해 땀을 흘리고 셔츠가 흠뻑 젖은 사람들은 분명히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관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몇몇 장관들은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환경부 장관인 니콜라 윌로다. 윌로는 마크롱 정부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상징적 장관이다, 그러나 몇몇 프로젝트에 있어 대통령과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다. 정무 장관인 브륀 프와르송(Brune Poirson)과 문화부 장관 프랑수와즈 니셍(Francoise Nyssen)은 동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어 유임 여부가 불투명하다. 전자는 여론에 대한 감성이 부족하고, 후자는 언론에 말실수를 계속하고 있다. 교통부 장관 엘리자베스 보른(Elisabeth Borne)은 막 이뤄진 국영철도(SNCF) 개혁으로 불만을 사고 있다. 30여 명의 장차관 중 10명 정도는 마크롱 내각 2년 차에 합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프랑스의 이러한 전통은 내각의 각료들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프랑스 대통령궁의 한 고문은 “이는 장관들에게 압력을 가하기보다 창조적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요약했다. 장관은 대통령의 하급 직원이 아니라, 대통령의 국가경영 비전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출범 1주년을 맞는 문재인정부도 나름의 결산표를 작성하고 2년 차에 들어서는 다짐을 새롭게 할 수 있길 바란다. 아울러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개헌을 통해서만 조정하려 들지 말고 지금 당장 장관들에게 적절히 나눠줄 수 있길 기대한다. 장관은 대통령의 하급 직원이 아니라 경영적 비전을 제시하는 계시자다. 2년 차를 맞는 새 정부가 장관을 좀 더 전면에 내세워 국정운영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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