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탈취 방지제도 무용지물)③부처간 대책 '엇박자'…행정력·벌칙 강화 위한 협력 절실
"대통령 직속 범부처 기관 설립하고 근절대책 보완 나서야"
2018-09-27 06:00:02 2018-09-27 06:00:02
[뉴스토마토 최원석 기자] 기술탈취 근절을 위해 정부가 전방위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워낙 오랫동안 굳어진 관행을 깨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 가운데 부처별로 조각나 있는 관련 대책을 한 군데로 모아 정책의 강도와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술탈취 근절 정책의 주관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다. 하지만 중기부가 정책만 마련하고, 실제 집행은 분리돼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기까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가 이원화돼 있는 구조 탓에 중기에게 절실한 지원책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탈취 자문과 분쟁조정 실무는 중기부가 아니라 산하기관인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하 협력재단)이 전담하고 있다. 기술탈취를 당한 중소기업이 중기부에 문의를 하면, 중기부는 집행기관인 협력재단으로 연결해주는 구조다. 협력재단은 조사 권한이 없어 상담 내용을 토대로 검·경찰, 공정거래위원회 등 신고에 도움을 준다. 수사기관에 신고 여부와 입증 책임은 해당 중소기업에 있다. 중기부에 기술탈취 직권조사 권한이 부여되는 오는 12월부턴 협력재단이 다시 중기부로 넘기는 '핑퐁 행정'도 연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2004년 설립된 협력재단은 대기업 등으로부터 출연금을 지원받는다. 따라서 기술탈취를 당한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입김에 좌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결과적으로 중기부와 협력재단은 기술탈취 해결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협력재단에 매년 상담건수가 6000여건에 달하지만 실제 기술탈취 입증 건수가 매년 10여건에 불과한 것도 정책 구성과 집행 기관의 시스템 한계에 따른 것으로 보여진다. 
 
기술탈취 관련 부처가 일원화돼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기술탈취 관련 부처는 중기부, 특허청, 공정위, 검·경찰 등 산발적으로 나눠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어느 부처에 도움을 문의해야 하는지 몰라 '뺑뺑이'를 도는 일도 허다하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일은 각 부처가 기술탈취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에 벌어진다. 기술탈취 판정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특허청과 협력이 필수로 여겨지지만, 특허청도 기술탈취 행정조사 권한이 없어 난색을 표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도급법상에서 기술유용행위에 해당되면 공정위가 조사해야 한다. 만일 국가핵심기술 유출이 의심되면 검찰까지 나서야 한다. 
 
정부도 이 점을 의식하고는 있다. 중기부·산업부·공정위·특허청·경찰청·대검찰청 등 6개기관이 모인 기술탈취 TF팀을 지난 2월 구성한 것도 이같은 문제의식의 발로다. 하지만 아직까지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진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TF 차원을 넘어 범정부 차원의 기구가 발족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TF팀이 기술탈취 문제를 해결한 것은 2건으로 여전히 미진하다"며 "기술탈취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통령 직속 범정부 차원의 기구가 필요하다. 범정부 기구가 합동으로 조사를 해 검찰과 공정위에 신고하거나 중재를 주도해야 한다. 범정부 기구가 조사에 나서기 때문에 대기업들도 따를 수밖에 없어 기술탈취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술탈취 TF팀 출범과 함께 같은 달 강력한 근절대책도 발표했다. 홍종학 중기부 장관은 취임 1호 정책으로 기술탈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하는 등 기술탈취 근절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 기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소기업 현장의 기대감은 아직까지 높은 편이다. 다만 정책의 신속한 시행 외에도 보완 대책이 시급하다고 중기업계는 말한다.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의 주요 내용은 ▲대·중소기업 간 비밀유지협약서 의무화 ▲기술탈취 혐의를 받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과 무관함을 해명하는 입증책임 전환제도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기존 3배에서 10배로 강화 ▲중기부 중소기업기술 침해행위 행정조사 도입 등이다. 
 
중소기업계 한 관계자는 "현장에선 행정력과 벌칙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벌칙 수준이 여전히 낮아 일단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고 보자는 유인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며 "3배 징벌적 손해배상도 실제로 집행된 적이 없는데, 10배로 올린다고 얼마나 불공정 행위 억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중소기업 간 비밀유지협약서 의무화의 경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당한 사유가 잇는 경우에는 대기업은 협력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기술자료 명칭·범위 ▲요구 목적 ▲요구일·제공일·제공방법 ▲비밀유지방법 ▲기술자료 권리 귀속 관계 ▲대가 및 대가 지급방법 ▲요구가 정당함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 등 7개 사항이 기재된 서면을 작성해야 한다. 
 
한 중소기업 고위관계자는 "비밀유지협약서를 쓰고도 기술탈취를 당할 수 있다. 기술유용 행위의 입증은 상당히 복잡하다"며 "대기업이 당사 형식에 맞게 중소기업 도면을 고치거나 공동개발한 기술이라고 주장하면 비밀유지협약서도 무용지물인 경우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기업이 협력업체 품질관리를 한다고 해서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책임을 진 적이 없다. 비밀유지협약서 의무화가 아니라 품질관리를 목적으로 자료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불법행위다. 품질관리 자료 요청을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며 "대기업은 단순 하청업체와 기술 중소기업 협력사의 구분해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기술 중소기업의 가치를 인정하는 구조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입증책임 전환의 보완책으로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변호사는 "기술탈취 사건의 증거 자료 대부분이 대기업에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피해 입증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중소기업이 대기업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대기업이 이를 숨기고 제출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증거개시제도가 도입되면 소송도 신속하게 진행되고 상당수는 합의 단계에서 분쟁이 종료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탈취를 범죄로 분명히 인식하고, 강력한 처벌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기술탈취 행위는 중소기업의 혁신 유인을 저해해 결과적으로 우리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중소기업 중심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막는 강도 높은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5월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TF 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에는 중기부 장관과 6개 유관부처의 관련 실·국장이 참여했다. 사진제공=중기부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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