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일하는 골드만삭스 소속 증권거래인은 2017년 기준 단 두 명뿐이다. 2000년 600명에 달했던 직원수는 컴퓨터 기술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면서 그 규모가 급격하게 줄어 들었다. 뉴욕 증권거래소 입회장 역시 5500명에 이르는 트레이더가 어슬렁거렸지만 이제는 400명도 채 남아 있지 않다.
인간의 감성과 창의가 필요한 영역마저도 일자리가 파괴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이아모스’는 실시간으로 교향곡을 만들어 내며 작곡가들을 위협하고 있고, 구글의 ‘뉴럴 네트워크’는 사람 같은 붓터치로 그림을 그린다. 인공지능(AI) ‘앨리(Ellie)’는 정신적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들과 마음을 나누며 인간 심리 치료사를 대신한다.
이 모든 현상은 신간 ‘보통 사람들의 전쟁’의 저자 앤드루 양이 직접 본 광경들이다. 변호사 출신의 기업가인 그는 신규 창업 기업을 지원하는 기업을 10년간 운영하면서 미국 전역의 수십개 도시를 발로 뛰며 관찰했다.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로봇 등으로 대변되는 기술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자동화되고 있고, 수백만명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제조업이 쇠퇴한 몇몇 주들은 대량 실업과 알코올 중독, 폭력으로 얼룩져 영화 ‘매드맥스’의 폐허처럼 변해버리기까지 했다. 이 기술 변화 양상을 피부로 느낀 그는 책에서 “향후 국가 차원의 별다른 조치가 없으면 ‘보통 사람’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 주장한다.
그가 책에서 일컫는 보통 사람은 소득 수준으로 줄을 세웠을 때 가장 중간에 선 사람들이다. 미국 기준 이 보통사람들은 기술로 대체될 분야(사무·행정, 영업·판매, 요리·서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미국 전체 노동인구의 약 48.5%에 해당되는 규모로, 이들은 현재 일자리를 잃고 있거나 잃을 위기에 놓여 있다.
현재 미국에서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 파괴가 가장 극심한 부문은 제조업이다. 500만명이 넘는 제조업 노동자가 2000년 이후 일자리를 잃었고, 그 중 80%가 넘는 4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자동화 때문에 사라졌다. 오하이오와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 제조업이 몰려 있는 도시에는 극빈층으로 전락한 공장 노동자들이 넘쳐난다. 2017년 네바다주와 콜로라도주에서는 자율주행 트럭의 화물 배달성공으로 화물 기사들의 일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다.
소매업도 종말 위기에 놓여있다. 아마존을 비롯한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부상하면서 기존의 소매업체들을 고사시키고 있다. 전자상거래 업체는 접수원 대신 아이패드를 쓰고, 배달원을 로봇이나 드론으로 대체한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5월 사이 미국 백화점에서 실직한 근로자만 10만명으로, 이는 미국 석탄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총합에 달한다.
‘자동화 쓰나미’가 만드는 일자리의 종말, 타개책은 없을까. 저자는 “능력과 효율을 우선에 두는 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신 “인간의 가치 실현에 중심에 둔 새로운 형태의 ‘인간적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는 국가가 성인 1인당 연간 1만2000달러 정도를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UBI)’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저자는 “UBI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이전하는 형태로, 공무원을 증원할 필요가 없고 관리에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며 “돈을 이전 받은 국민들은 지역 상권, 나아가 국가 경제를 지탱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2020~2030년 안에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사람과 공동체가 무너질 것이고 빈민과 무능력자의 증가로 사회는 분열될 것”이라며 “인간이 시장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자본주의가 아닌 인간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구매력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발생, 반사회적 활동 장려 등의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는 시기엔 제품 원가가 하락하므로 인플레를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다”며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현재 자본주의체제에서 발생하는 반사회적 활동 대신 치료 기회를 찾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라 반박한다.
책 도입부에 쓴 문장 몇 개가 300쪽에 달하는 책 한 권을 요약한다. “‘능력 위주의 사회’라는 논리는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그 말에서 이미 우리 모두가, 자동화와 혁신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경제적 곤경에 빠진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무시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이런 시장 논리를 깨뜨려야 한다. 시장이 우리 각자에게 부여한 가치와 상관없이 사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월급봉투에 적힌 금액으로 평가받아서는 안 되는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의 전쟁'. 사진/흐름출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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