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상상에나 있을 법한 대륙은 사실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고고학자들조차 듣도 보도 못하거나, 태평양 저 땅 밑으로 꺼져버린 것이 아니었다. 훗날 제임스 처치워드 같은 사람에 의해 인류사 최초 문명이라 소개될 굵직한 이미지까지는 아니어도, 어쨌됐건 선명했고 실재했다. 어느 해변 모래 알갱이처럼 흩어지는 셰이커와, 동화를 그려내는 트라이앵글과, 그 모든 것들의 나른함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 거기 널부러듯 있었다.
밤낮으로 30도가 넘는 흉폭한 날씨.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복 하루 전. 상수역에서 내려 다한증 환자 같은 모습으로 걷다 지하 큰 철문을 열면 그 곳이 있었다. '무대륙'. 흰수염을 한 작가와 과학자가 여러 가설을 들이밀며 진실 논쟁을 벌일듯 한 이름의 그 공간에는, 대신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예술가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긴 맥주병을 들고 소곤 소곤. 녹색 달걀 물체(에그셰이커)를 흔들며 쉬익 쉬익. 그 소리들은 이제 곧 우린 문명 충돌 같은 걸 보게 될 거야,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보사노바와 삼바의 세계는 그렇게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을 법한 곳에서, 서구와 토착 문명의 충돌처럼 다가왔다. 해질녘 첫 무대에 오른 듀오 브루나는 상큼 달달한 유토피아 세계에 데려다줄 것 같이 연주하고 노래했다. 어쿠스틱 기타와 플룻 만으로 빚어지는 투명한 바람결 같은 멜로디들. 두 사람은 마음의 소리를 꾹꾹 눌러담은 '우마 카르타(Uma Carta·포르투갈어로 편지로 이들의 EP 앨범 제목)'를 쓰기 시작했다. '멍하니 바라보기', '온종일 늦잠자기', '조용히 흥얼대기'. 대체로 무질서로 번잡한 회색 서울에선 찾기 힘든 상상의 것들. 여유와 낭만의 언어에 빤데이루가 살포시 더해져 흥을 돋궜다. 객석 사람들은 휘파람, 콧바람을 자연히 불었다. 뒤섞이는 소리들의 나룻배에 실려 우리는 그렇게 항해했다.
밴드 브루나.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브루나에 이어 무대에 오른 화분은 또 전혀 다른 세계로 우리를 이끌었다. 이들은 70년대 삼바 펑크(Funk)부터 아프리카의 강한 토속적 리듬, 브라질리언 사이키델릭까지를 넘나드는 연주를 선보이는 국내 유일의 5인조 삼바 밴드.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띈 건 트라이앵글 등 없는 게 없는 퍼커셔니스트. 눈을 감고 그의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가상의 공간들이 무한히 창조됐다. 목탁 같은 소리는 어느 사찰로 이끌더니 풍경소리로 이어졌고 곧 조약돌이 구르는 강가가 됐다. 언뜻 무질서처럼 보여도 교묘히 질서를 이루는 찰떡 같은 소리의 합들은, 끝내 목소리로 터지는 일상의 응원가가 됐다.
'너무 걱정하지마 너의 오늘이/네 맘에 들지 않아도 그저 그럴 수 있다고/흘려 보내줘/ 헛된 시간은 없어 야야 야야야'(여기, 삼바)
태평양을 횡단해야만 들을 수 있을 노래들. 어쩌면 서울에선 상상에나 있을 법한 멜로디와 가사들. 잔잔한 보사노바와 흥겨운 삼바에 취한 21세기 이 날의 무대륙은 실재했다. 그건 여유의 미학이었고, 노래하는 섬이었며, 예기치 못한 우아함이었다.
공연 말미 멤버들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심각한 삼바였는데, 요즘엔 밝고 건강하게 변했다"며 웃었다. 그 밝은 건강함이 민들레 홀씨처럼 공연장에 흐드러졌다. 사막 같던 한 여름밤, 한 줌의 오아시스가 거기 있었다.
밴드 화분.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 기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2019 인디음악 생태계 활성화 사업: 서울라이브' 공연 평가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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