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5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3층 비즈니스 라운지.
어깨까지 닿는 꼬불 머리를 귀 뒤로 넘긴 덴마크 싱어송라이터 루카스 그레이엄(본명 루카스 포캐머·32)은, 저 멀리서도 미소 만으로 눈에 띄었다. 색깔별 물고기들이 콜라주처럼 붙은 하얀 셔츠 때문인지 생기 넘치는 표정이 더 밝게 보였다.
'루카스'라 한글로 적힌 모자를 돌려 쓴 그가 자유롭게 악수부터 청했다.
"반가워요. 엊그제 입국해 48시간이 됐네요. 이틀 내내 거의 뭐.. 한국 사람처럼 지냈죠."
덴마크 싱어송라이터 루카스 그레이엄. 사진/워너뮤직코리아
이날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때문에 한국에 온 그는 겸사겸사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누볐다. 제일 먼저 거대 부처상이 있는 절에 가 돌탑을 쌓았다. 가족의 평온과 마음의 평화를 빌었다. 이태원 음반샵에선 생전 아버지가 들려주던 음악이 생각났다. 디안젤로와 비틀즈 레코드를 몇개 샀다.
2012년 데뷔해 그래미어워즈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이 세계적인 가수는, 남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산다. 가장으로서 아내와 딸에게 최선을 다하며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쉬이 흘려보내지 않는다. 최근 삶의 진리를 찾아나선 이 '고행자'는 불교 경전까지 읽는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면 마음에 평화를 얻죠. 그건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진리예요."
녹갈색 눈동자가 선명한 그는 높고 얇지만 부드러운 음성, 그러니까 '세븐 이어스(7 Years)' 때의 굳건하고 단단했던 목소리와는 조금 다르게 말했다. 또 질문 때마다 간단하고 명확한 답보다는, 한 권의 동화책을 읽어주듯 비유를 제시하고 끝에 답을 내놓는 명석한 답을 했다.
루카스 그레이엄. 사진/워너뮤직코리아
그가 프론트맨으로 있는 밴드는 데뷔 때부터 자전적 노래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루카스는 과거의 생부터 30살, 60살로 이어질 성장을 예언했고(‘7 Years’), 데뷔 직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자신의 성공을 보여줄 수 없음(‘Happy Home’)을 아파했다. 조각난 마음을 이어붙인 내면의 '음유시'는 세계에 닿았다. 7 Years의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무려 9억건에 달한다.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만 의미 있는 '팝콘', '패스트푸드' 같은 세상이지만, 우리 모두는 잠깐 한 번씩 멈춰 생각해야해요. 나 다움이 무엇인지…. 살지 않은 삶에 대해 곡을 쓸 수는 없어요."
25살 때 쓴 곡 '7 Years'는 7살, 11살, 20살 때의 과거부터 앞으로 향할 30살, 60살을 관조하는 곡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해주던 삶의 이야기, 이후 나이가 들어 자신이 바라볼 세상과 아이들. 곡 전반부를 살던 그는 결혼하고 딸을 키우며 어느덧 곡 중후반부를 지나고 있다.
"요즘은 풀밭에서 딸과 완벽하게 쪼그려 앉는 법을 같이 배우죠.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법을 새롭게 느끼고 있어요. 딸은 제 곡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줘요."
루카스 그레이엄. 사진/워너뮤직코리아
"딸을 통해 어린 시절을 재현해 사는 것 같다"는 그는 '젊게 산다는 것'의 의미도 분명히 했다. "자기 기준으로 비판하고 판단하는 '꼰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거예요. 나이가 들어도 젊게 산다는 건 젊은 사람들과 젊은 척 하며 어울리는 그런 게 아녜요."
아버지는 그에게 젊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몸소 보여준 분이다. 일이 끝나면 집에 와 깔끔하게 샤워하고, 면도하고, 멋진 셔츠와 재킷을 입고 루카스와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눈물을 흘리다 휴지를 찾아 일어선 그가 말했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살고 싶어요. 아이들이 애쓰지 않고 세상을 쉽게 바라보듯, 어려운 걸 쉽게 하셨던 분이었어요."
루카스는 덴마크 크리스티아니아에서 나고 자랐다. 이 곳은 덴마크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인정 받은 마이크로네이션이다. 거리에 가로등도 없고 차도 많지 않은 '히피'스런 동네엔 어딜가든 음악이 울려퍼졌다. 로스쿨에서 법 공부를 하던 그는 결국 뮤지션으로 전향했다.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께선 그쪽 세계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곳인데 거기가냐고 울면서 말씀하셨어요. 그때 '난 나를 믿을 수 있어 괜찮아 엄마' 했죠."
독립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그는 자립심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었지만, 시간이 흐른 이제 음악은 주변인들과 함께 일궈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은둔자처럼 산에서 꿀과 딸기만 먹으며 살 수는 없죠. 돌아보면 모든 것이 팀의 힘이었어요. 사는 것도 협렵으로 하듯 음악도 그렇다는 걸요."
지난 5일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무대에 선 루카스 그레이엄. 사진/프라이빗커브
기자는 미래의 어느 시점을 가정했다. 기술 속도가 빨라져 모두 VR 고글만 쓰고 아무도 내면에 집중하지 않는 세상. 그때로 루카스가 갑자기 이동한다면 어떤 곡을 쓸 것인지, 또 지금 곡 중 어떤 곡을 선별해 그 '미래 인간'들에게 들려줄지 물었다. 5초 정도 고개를 푹 숙이던 그가 그림 같은 답을 냈다.
"흘러가는 강물에 인생을 비유해볼게요. 그 흐름에 그저 생각없이 따라가는 죽은 물고기가 되고 싶진 않아요. 우린 잠시 멈춰 서서 왜 저 방향으로 갈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자, 이제 답을 낼게요. 미래 사회가 어떻게 흘러간대도 제가 곡 쓰는 방법이 바뀌진 않을겁니다. 내 곡은 일단 나를 먼저 감동시켜야 하거든요. 삶의 목표는 다른 무언가가 아닌, '살아있는 나' 자체여야 해요. 그때도 저는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그거에 집중할거예요."
지난 5일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무대에 선 루카스 그레이엄. 사진/프라이빗커브
"제 생에 가장 최고의 아이돌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날 오후 3시경, 무대에 선 루카스가 수천 관객 앞에서 말했다. 마침 회색 구름이 살짝 열리며 한 줌의 노란 빛이 무대로 새어 들었다. 노래할 땐 '애쓰지 않는 자유를 느낀다(Effortless freedom)'는 그가 마이크에 입을 댔다.
밥 딜런 가사 같은 경험. 고음이 천국을 노크했다.
'우리에게 환호하는 관중들의 소리를/아버지가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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