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산 속에서 살았습니다. 밥 해주는 사람 없었습니다.”
윤도현(48)은 앉자마자 ‘야인(野人)’ 체험기부터 풀어놨다. 2년 전 경기 양평군의 한 렌탈 하우스로 떠난 음악 혹은 내면 여행. 콘테이너 두 동을 장기 임대해 곡 작업만을 위한 환경을 구축했다. 키보드, 컴퓨터, 어쿠스틱 기타, 밥통, 자전거…. “밤낮 없이 곡만 썼어요. 배고프면 밥 지어 먹고, 바람 쐬고 싶으면 잠깐 나가 자전거 타고. 다 풀어헤친 자유인이었죠.”
8일 서울 망원동 인근 카페에서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YB[윤도현(보컬)·허준(기타)·스캇 할로웰(기타)·박태희(베이스)·김진원(드럼)]를 만났다. 최근 6년 만에 10집 'Twilight State'를 낸 밴드는 “흔히 오래 활동한 밴드라 하면 ‘클리셰(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가 있기 마련인데 그걸 깨보고 싶었다”며 윤도현이 산 속에 들어가야 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달 YB 10집 'Twilight State' 쇼케이스에서 노래하는 윤도현. 사진/뉴시스
윤도현 홀로 떠난 ‘송 캠프’는 YB의 많은 것을 바꿔놨다. 멤버들과 함께 곡을 쓰는 대신 오롯한 자신 만의 창작으로 곡들이 탄생했다. 주위의 반응 하나, 하나에 일일 신경 쓰던 자신에서 완전히 탈피. 홀로 기타를 치고 벽에 대고 이런 저런 목소리를 ‘실험’하며 새로운 음악을 탐구했다. 이 데뷔 25년 차 가수는 “여전히 노래 부를 때 쑥스럽지만 이번엔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도현이가 혼자 작업한 결과물을 나중에 받았을 때 많이 낯설었습니다. 이제까지 하던 우리 스타일이 아니었죠.”(김진원)
“음악적으로는 화성학적으로 가야만 하는 길들을 틀어봤고, 꽉 채우려고만 애썼던 소리 부분에 여백도 많이 줬어요.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생각이 바뀌어야 음악이 바뀐다는 사실이었죠.”(윤도현)
지난달 서울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10집 'Twilight State' 쇼케이스를 연 YB. 사진/뉴시스
윤도현은 산 속에서 사이키델릭한 조명을 방에 틀어놓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음악을 하다 막히면 챙겨간 여러 책들을 읽기도 했다.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라는 책은 이번 작업기간 거의 달고 살았다. “라디오헤드 가사에는 나보다 우리라는 주어가 많다고 합니다. 그들은 나약함을 풀어낼 때도 인간 개인보단 우리라는 전체 개념으로 바라보죠.”(윤도현)
자기 내면에 집중한 시간은 이들의 음악을 내밀하고 유연하게 바꿔 놓았다. 사회적 현상이나 이슈를 바라보고 직관적으로 담던 가사들은 슬프고, 기쁘고, 우울하다는 내밀한 감정을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하는 고민을 묻히고,(곡 ‘거짓’) 절망과 비극 같은 세상에서 눈물 넘어 슬픔을 공유한다.(곡 ‘반딧불… 그 슬픔에 대한 질문’). 솔직함을 퍼센트로 수치화하면 몇이나 되냐는 본지 기자의 물음에 윤도현은 “100% 하지 못할 거였으면 애초에 하지 않았다”며 “실제로는 곡을 만들며 120%, 200% 까지 솔직하게 접근할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동안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들, 이를테면 인간의 나약함 같은 걸 음악으로 끌어내보려 했어요. 옳게 여긴 것들 중 틀린 게 있을 수 있고, 틀리다 생각했던 것 중 옳게 봐야 하는 것도 있음도 알게 됐어요.”(윤도현).
밴드 YB. 사진/죠이커뮤니케이션
10집에 와서 밴드는 지켜야 하는 것과 진화해야 하는 것 사이의 공존을 추구한다.
지키고 싶은 것은 지난 25년처럼 주변에 힘이 되는 희망과 위로의 음악을 만드는 일. 진화시켜야 할 것은 세계적인 사운드를 쫓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소화해 YB 만의 숙련다움을 만드는 것.
타이틀곡 ‘나는 상수역 좋다’에는 밴드가 지키고 싶은 정서가 있다. 아련하고 맑은 90년대 감성. ‘나는 나비’를 작사·작곡한 멤버 박태희가 썼다.
“굳이 상수역 만을 의미하진 않아요.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역이죠. 페스티벌에서 경주역으로 바꿔 부른 적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현장성도 있는 곡이죠. 목포역, 부산역, 대구역, 광주역, 그리고 나중에 평양역…. 그런 상징적인 역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박태희)
그런가 하면 다른 타이틀곡 ‘딴짓거리’는 밴드가 진화 중인 모습이다. 현재 세계 음악신에서 ‘핫’한 슈퍼올가니즘의 한국계 멤버 소울이 목소리를 보탰다. 8명의 서로 다른 국적 멤버로 구성된 이 팀은 음악을 연주하는 도중 빨대를 물고 물방울 소리를 내거나 링컨 연설을 읽는 상상 초월의 실험적 밴드.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음악을 하는 팀 중 하나다.
“‘딴짓거리’ 같은 곡은 처음에 도현이가 들고 왔을 때 굉장히 퀘스천 마크였어요. 지금에 와서야 왜 그렇게 시도했는지 알게 됐지만.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도현이 혼자 산 속에서 쓴 곡이 전과 같았다?’ 그랬다면 분명 YB는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김진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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