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너와 나, 생명의 음악, 루시드폴
'소리는 음악일까'서 출발…16일 9집 '너와 나' 발매①
자연과 소통 "반려견, 비인간 어떻게 봐야할까요"
2019-12-16 18:00:00 2019-12-16 1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10일 저녁 5시경, 서울 강남구 안테나뮤직 사옥. 정면에 앉아 목도리를 두른 뮤지션 루시드폴(본명 조윤석·43)을 보며 불현듯 류이치 사카모토가 떠올랐다. 더 정확히는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코다'가 머릿속 내내 재생됐다.
 
'코다'는 일본의 세계적 음악가 류이치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2014년 인두암 진단을 받은 그는 이후로 삶과 음악을 전면 재검토하는 여정에 나선다. 영화를 관통하는 류이치 고민의 가장 큰 줄기는 이렇다.
 
'지금까지의 음악은 인위적인 것이었나, 그렇다면 자연적인 것은 무엇인가.'
 
동일본 대지진이 조율해 준 송장 같은 피아노에서 그는 새로운 음악을 본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발자국 소리…. 자연이 음악의 새 원료가 된다.
 
최근 루시드 폴 역시 비슷한 삶의 전환을 겪었다. 2013년 무렵부터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시작했던 그는 지난해 6월 말 사고를 당했다. 농사용 기계 벨트에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이 끼는 골절상을 입은 것. "약간 금이 간 줄 알았는데 좀처럼 손가락이 안펴지는 거예요. 저는 평생 기타를 치며 노래 만들던 사람인데…."
 
수소문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원 상태로 회복되기까지의 시간. 길지 않은 이 시간은 그에게 적지 않은 변화를 줬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소리가 뭔지, 음악이 뭔지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비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음정이 있고 화성이 있지 않나 하는 도발적인 생각도 하게 됐고. 요즘은 있는 소리 자체를 음악으로 재창조하는 것도 결국 뮤지션 역할이지 않나 생각해요."
 
루시드폴. 사진/안테나뮤직
 
쉬는 동안 그는 미국 음악가 테일러 듀프리의 인터뷰를 읽었다. 뉴욕에서 시골로 이사했다는 듀프리는 자신처럼 농사를 지으며 자연의 소리들로 음악을 만들었다. 소리를 채집해 템포, 음의 높낮이를 분석하고 전자음으로 변주한 엠비언트 음악. '그래뉼라 신테시스'란 기술을 활용하면 이것이 가능했다. 기타를 쓰지 않아도 새로운 소리, 음악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뉼라 신테시스란 소리를 합성시키는 장치예요. 30년 전 그리스 뮤지션이 처음 개발한 방법인데 일단 테이프에 녹음을 쫙 하고 이를 아주 작은 단위로 분해해 순서를 바꾸거나 뒤집거나,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이죠. 잘게 자를수록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소리를 얻을 수 있어요."
 
새로운 기술로 그는 새로운 음악적 상상을 했다. 16일 발매된 9집 '너와 나'는 소리 본연에 집중해 제작한 앨범이다. '코다'의 류이치처럼 그는 새 음악적 원료를 자연적인 것들에서 찾았다. 제주의 바다와 스웨덴의 호수, 마을, 새, 산책 걸음, 반려견 보현…. 자연과 소통한 이번 앨범은, 그 독특한 주제 만으로도 천편일률적 주제의 음악 시장에 어떤 울림이 되지 않을까.
 
"제주에서 보현과 산책할 때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2.5톤 트럭이 돼지들을 싣고 가는 모습을 봐요. 가축을 키우는 게 죄악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저 돼지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생각이 줄곧 들어요. 반려견을 어떻게 바라 봐야 하는지, 비인간을 어떻게 봐야 봐야하는지, 이 앨범이 그런 이야기를 담은 건 조금 다른 지점이라 생각해요."
 
제목 '너와 나' 역시 나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한 결과다. 너를 중심으로, 같이 살아가자는 우리와 생명에 대한 이야기다. "길고양이가 됐든, 가로수가 됐든, 우린 결국 생명과 같이 살아가야 해요. '굶어죽는 사람도 많은데 강아지한테 그렇게 잘 해줘'란 사람도 있는데, 잘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은 굶어죽는 이에게도 잘하지 않을 것 같아요."
 
루시드폴. 사진/안테나뮤직
 
제주도에 살면서 '소리는 음악일까' 하는 고민은 점차 짙어지고 있다. 이번 앨범을 기점으로 시작된 소리, 음향의 관심을 여러 아이디어로 풀어낼 계획이다.
 
최근 그의 과수원 주변에는 타운하우스, 아이파크 같은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 용접하는 소리, 나무 베는 소리, 공구 소리 같은 굉음을 매일 듣는다. 어느날 그것들을 '싫은 소리'라 규정한 자신을 발견했다. "불현듯 '좋은 소리', '싫은 소리'는 어떤 기준에서 결정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또 이 몸서리치게 하는 쇳소리들을 채집해서 치유의 음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 거죠."
 
가꾸는 진귤 나무에 스트레스 없는 전극을 연결해 다양한 소리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벌이 와서 꽃과 수정될 때 소리가 변하지 않을까? 수정임을 확인하고 오지 않을 땐 어떤 신호를 받을까? 앵두 나무, 비자나무, 벚나무, 치작나무에 따라 소리는 같을까? 저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이날 인터뷰 장소엔 루시드폴이 직접 재배한 귤향이 가득했다. 농사일 6년차인 그는 테이블 곳곳에 올해 결실을 맺은 귤들을 가져다 놓았다. "처음엔 관행논법으로만 하다가 유기농 재배법 비중을 점차 확대해가고 있다"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면 봄순은 괜찮은데 여름순은 병충해가 심해져요. 수확량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전 나무 한 그루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고, 그걸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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