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대한항공이 코로나19에 따른 비상 경영의 일환으로 직원에게 연차 소진을 독려 중인 가운데 회사 임의대로 날짜를 지정해 사용하게 하면서 내부 불만이 커지고 있다. 말로는 연차 소진을 권고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용을 강제한다는 내부 직원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다.
17일 대한항공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는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 노선을 운휴하며 직원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날짜를 지정해 연차를 사용하도록 했다. 익명을 요구한 직원 A씨는 "부서에 따라 다르지만 이달 몇 개 이상 연차를 사용하라는 식"이라며 "승무원 같은 스케줄 근무를 하는 직종의 경우 관리자가 임의로 연차 일을 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청하지도 않은 날짜에 강제로 쉬어야 하는 직원들이 생긴 셈이다. 사내 분위기상 이를 거부하기도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자 전날 대한항공 노조 또한 임의로 연차 사용을 강요한 사례를 제보해달라고 공지를 띄웠다. 노조는 "경영상의 이유로 휴가를 강제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라며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이라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앞서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2일까지 4월 연차 신청을 받는다고 공지했다. 앞서 3월에도 연차 소진을 독려했는데, 이때는 객실승무원 중 300명이 대상이었다. 연차가 많이 남은 직원들이 우선 대상이고 나머지 150명은 무작위로 선정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심각해지자 4월에는 인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연차 소진 차원에서 직원에게 휴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한 바 있다.
대한항공이 코로나19로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자 연차 사용을 강제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에서 포착된 대한항공 승무원들. 사진/뉴시스
대한항공 직원들도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회사 임의대로 날짜를 지정하거나 사용 자체를 강제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대한항공은 그동안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조직이었기 때문에 불만이 더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 직원은 "필요할 때는 안 주던 연차였는데 지금은 회사 생각해서 쓰라고 압박을 주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연차수당을 연말에 지급하지 않고 남은 연차를 다음 해로 넘긴다. 연차수당은 퇴직할 때나 받을 수 있다. 이 직원은 "오랜 기간 근무한 일부 직원은 연차가 100개가 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대한항공은 전체 노선 124개의 70%가량인 89개를 멈췄다. 이에 따라 다른 항공사들이 이미 시행한 무급휴직 같은 고강도 대책이 필요하지만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있어 아직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연임을 위해 내부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직원들 사이에는 이달 27일 한진칼 정기 주총이 끝나면 전사적으로 무급휴가가 시작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대한항공은 노선 대부분이 운휴하며 비행 스케줄이 안 나오자 연차 소진을 통해 인원 조정에 나선 것은 맞지만 강제하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원하지 않는 연차 소진은 직원이 당연히 거부할 수 있다"며 "운영 상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직원들 사이 무급휴직 이야기가 도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사진/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홈페이지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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