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 인간은 역시 위대하다
2020-03-31 06:00:00 2020-03-31 06:00:00
누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던가. 코로나19로 떨고 있는 우리들. 바이러스 공포에 맥을 못 추고, 밤새 늘어나는 감염자들과 사망자들 소식에 당혹감과 위기감을 느낀다. 1천만분의 1센티미터 초미세 입자 앞에 벌벌 떠는 미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도 역시 인간은 위대하다. 위기를 극복하려는 강인한 의지로 방법을 찾아 헤매는 부단한 노력. 생존을 위한 본능일까. 코로나19가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인간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한국은 반값 임대료, 마스크 기부 등 자선 행위들을 벌이며 연대를 강화하고, 진단키트·드라이브 스루 등을 고안해 코로나19를 물리치는데 질주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나름대로 지혜를 총동원해 천하무적 코로나19를 무찌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 중이다.
 
백신의 신속한 개발이 이 전염병을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이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 그럼 신약개발만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것인가. 대체재는 전혀 없는 것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프랑스의 한 교수는 기존의 약으로 코로나19를 잡으려는 시도를 해왔다. 마르세유 렝스티튀 오스피탈로 위니베르시테르(l'Institut Hospitalo-Universitaire)의 디디에 라울(Didier Raoult) 교수는 클로로퀸을 이용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실험을 했다. 그는 80명의 코로나19 환자에게 6일에서 10일 동안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과 항생물질인 아지트로마이신(azithromycine)을 함께 투여한 결과 80%가 호전되는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앞서 라울 교수는 지난 3월 초에도 1차 실험으로 코로나19 환자 24명을 상대로 똑같은 임상실험을 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효과성과 적합성을 밝혀냈고, 코로나19환자 치료제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은 라울 교수의 연구방법론에 이의를 제기했고 적지 않은 두려움을 나타냈다. 왜냐하면 이 연구는 한 그룹을 상대로 실험을 해서 효과성을 밝혀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 사회는 한동안 갑론을박으로 시끄러웠다. 한쪽은 라울 교수의 제안에 찬동하는 쪽, 다른 한쪽은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이 펼쳐졌다. 결국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라울 교수의 손을 들어 줬고, 프랑스 정부는 지난 26일 관보에 행정명령으로 코로나19 환자에게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 처방을 허용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 행정명령은 의사의 책임 아래 코로나19 환자들에 한해 하이드록시클로로퀸, 그리고 로피나비르와 리토나비르를 함께 조합해 처방할 수 있도록 했다. 올리비에 베랑 보건부 장관은 라울 교수의 진화된 보고서를 치하했고 라울 교수는 베랑 장관의 경청에 감사를 전하는 트위터를 주고받았다.
 
복수의 프랑스 정치 책임자들은 이 결정에 경의를 표했다. 특히 마르세유 공화당 하원의원 크리스티앙 에스트로지(Christian Estrosi)를 비롯해 에릭 디아르(Éric Diard), 쥘리앙 오베르(Julien Aubert), 브뤼노 르타이오(Bruno Retailleau) 공화당 의원들은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라울 교수의 연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프랑스 마르세유 축구팀 OM(Olympique de Marseille) 응원단 사우스 위너스(South Winners)도 디디에 라울 교수를 지지하는 현수막을 렝스티튀 오스피탈로 위니베르시테르 앞에 내걸고 있다.  
  
라울 교수는 코로나19를 무찌르기 위해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사용에 대한 세계적 토론의 중심인물이 됐다. 일부 의사들과 국가,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 약을 폭넓게 사용하자고 촉구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약을 ‘신의 은총’으로 규정짓고 있다. 그러나 과학계 대부분과 보건위생 기관들은 일어날 수 있는 리스크를 가정해서 엄격한 과학적 인준을 기다릴 것을 호소하고 있다. 
 
라울 교수의 실험은 이처럼 백신의 개발을 기다리는 동안 코로나19와 싸울 수 있는 하나의 또 다른 무기를 발견하는 시도가 되고 있다. 그의 실험처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기대해 보지만 과학계의 염려대로 아직은 미심쩍은 부분들도 많다.
 
단지 여기서 지적해 보고 싶은 것은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유효성이 아니라 인간의 도전의식이다. 하루에도 천 명에 육박하는 코로나19 사망자를 바라보며 속수무책 한숨만 쉬지 않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은 숭고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라울 교수의 처방이 신의 은총이길 바라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의 시도는 또 다른 시도를 낳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1천만분의 1센티미터 바이러스 앞에 더러는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는 게 인간이다. 이러한 우리에게 코로나19가 제 아무리 극성을 부린들 결국은 두 손 들고 항복하게 돼 있다. 단지 그날을 위해 우리는 연대하고 지혜를 모으자.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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