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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公'을 훼손하는 정부
국정실패는 감추고 공공에 전가
2014-10-28 16:03:38 2014-10-28 16:03:38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요즘 공무원 연금개혁 문제로 온나라가 시끄럽다. 정부와 여당은 공적연금 적자를 줄여 재정건전성을 강화하자는 입장인데, 경제가 어려우니 공무원도 고통을 분담시키겠다는 정부의 구호에 솔깃한 시민들은 연금개혁을 지지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공무원 연금개혁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정부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지난 1년간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추진한 공공성 훼손과 맥락이 비슷하다. 정부는 그동안 국정실패의 책임을 공공부문에 전가하면서 정작 정부의 국정 실패는 감춰왔다.
 
지난 27일 새누리당이 공개한 공무원 연금개혁안은 연금 수령시기를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늘리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하는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안까지 포함할 경우 정부와 여당은 2080년까지 440조원의 지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연평균 6조7000억원 수준. 그러나 기업투자를 확대하거나 수출을 늘려 440조원을 버는 게 아니라 공무원에게 줄 돈을 뺏어 재정적자를 줄이고 예산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은 박근혜 대통령의 처참한 경제성적표를 만회할 수단으로 전락했다.
 
◇공무원 노조가 정부와 여당의 공무원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면서 정부와 공무원 노조 간 갈등이 불가피해졌다.(사진=뉴스토마토)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를 보면, 박 대통령 집권 1년차의 GDP성장률과 고용률은 2.8%, 59.6%에 그쳤다.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 구현과 경제민주화 등을 강조하며 마치 새로운 경제활력소를 불어넣겠다고 공언한 것을 떠올리면 경제에 전혀 약발이 안 먹힌 셈이다.
 
오히려 가계부채와 국가채무, 전셋값 등 부정적 지표만 더 악화됐다. 더구나 지난해 정부는 행정부 구성지연과 남북관계 경색, 국정원 의혹 등으로 사실상 레임덕 상태에 빠지면서 막연한 경제살리기 구호로는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공공부문 노조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정부가 남은 임기 내에 뭔가 성과를 내려면 경제민주화보다는 '대기업-부동산-수출-투자'라는 익숙한 경제정책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고, 정부에게는 정책실패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이 필요해졌다고 분석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올해 초 발표한 신년 담화문을 통해 '경제혁신을 위한 내수와 수출의 균형성장'과 '주택매매 활성화'를 강조하며 "공공부문의 비정상적인 관행과 낮은 생산성이 국가경제 발전에 더이상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데서도 드러난다.
 
이후 10개월 가까이 박근혜정부는 공무원 연금개혁과 철도 민영화와 전력시장 민영화, 의료민영화 등 거의 모든 공적영역에서의 민영화를 쉼 없이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공공성 훼손에 따른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민영화의 경제적 효과만 선전하기 빠빴다. 수서발 KTX노선을 개통하면 철도시장에 경쟁력이 생겨 철도요금이 최대 10% 인하되고 수서역 인근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식이다.
 
대신 정부가 무리한 투자로 공기업 적자를 키웠고 전력수급을 잘못 예측해 전력난을 초래했다거나 경제민주화 포기에 따른 문제점 등 정책실패는 언급되지 않았다.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공공부문 개혁이 공공부문 측의 자발적 논의로 시작된 게 아니라 청와대가 의제를 설정해 추진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무원 연금개혁을 '개악(改惡)'이라고 주장한 전국공무원노조 측은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면 공무원들과 논의해 진행하면 됐다"며 "그러나 정부는 연금운용 실패에 대한 책임은 회피한 채 공무원만 많이 받는다고 국민정서를 자극하면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개혁은 또 공적영역의 규제를 허물어 대기업 진입을 허용하려는 의도가 짙다.
 
전국발전산업노조 측은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은 공무원 임금 삭감으로 재정부족을 만회하고, 공공부문 민영화로 비정규직을 양산해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미봉책"이라며 "결국 대기업만 손에 먼지를 묻히지 않고 공공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개혁은 공공부문 근로자의 일자리를 뺐고 있다.
 
보건·의료산업 활성화를 의료 민영화로 규정한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 의료 선진화라고 해명하지만 이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하겠다고 자국 환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격"이라며 "공공병원은 적자가 쌓이고 노조가 탄압을 받아 근로자의 의욕이 꺽이는데 최첨단 의료기기만 갖추면 이 산업이 선진화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관계자들은 방만경영을 줄이고 부채를 청산하는 식의 개혁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방만경영과 부실의 원인을 정확히 따지지 않고 밀어붙이는 식으로 진행되는 개혁은 결국 '모든 공공부문의 상위 조직'인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경고했다.
 
전공노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시절에 '공무원이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공무원의 지위향상과 근무여건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며 "지금 그때의 약속은 간데 없고 비정상적 관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누구냐"고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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