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투 펀치를 맞고 한순간에 쓰러졌던 박근혜 정부와 달리 무수한 잔 매를 맞으면서도 꾸역꾸역 버티는 윤석열 정부다. 이대로라면 만신창이로라도 모든 라운드를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즉에 수건을 던져 경기를 포기하는 게 자신들에게도 이로울 터이지만 이 정부는 회심의 카운트 펀치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버틴다.
여러 녹취록을 통해 각종 의혹이 터져도 대통령실은 이를 방어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 용산의 대통령실은 명태균 씨가 제기하는 각종 여사 관련 의혹에 아예 대응을 포기했다. 그저 임기만 채우겠다는 의도 말고 이 정부에 어떤 비전이나 희망이 남아있는가.
보궐선거 이튿날인 10월 17일에 서울중앙지검은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에 대해 불기소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는 이 결정이 법리적으로 맞는지에 대한 구구한 논의는 하지 않기로 한다. 정상적인 국가 지도자라면 부인과 장모가 주가 시세 조작범들과 통정매매로 벌어들인 23억원에 대한 재산권을 포기하고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염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내가 공항에서 우연히 가방을 습득했는데 그게 마약 사범의 가방이었고 거기에 23억원이 들어 있다고 치자. 분명 나는 법을 어긴 적이 없지만 이 돈은 내가 땀을 흘린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당연히 수사 기관에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가 자신이 한 것이므로 당연히 수익금은 자신의 것이고, 주가 시세 조작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잡아뗀다. 결국 검찰의 김 여사 불기소 결정은 검찰이 윤석열 부부에게 23억원을 상납한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다가 법적 면죄부까지 참으로 바닥의 누릉지까지 박박 긁어서 상납을 했다. 누군가의 범법 행위로 인해 거둔 이익이라도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는 권력자의 태도는 주은 돈을 내 것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이런 알토란 같은 돈에 세금 내는 것도 아까워서 이 정부가 금융투자세를 폐지하자는 것은 아닌가.
토드 필릭스 감독의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인 광대 아서 플렉은 착하게 살아보려 하지만 인생의 부조리함에 좌절한다. 세상의 더러움에 그는 결국 악당 조커로 재탄생하는데, 세상의 부조리함에 넌더리가 난 대중이 그를 영웅시한다. 최근 김 여사의 비밀을 한꺼풀 씩 벗겨내는 명태균 씨가 바로 한국의 조커다. 김 여사를 제압했을 뿐만 아니라 여당의 최고위원과 서울시장, 대구시장, 여당의 전 대표와 비대위원장까지 두루 조롱하는 그에게 어느새 뭇 언론이 마이크를 들이댄다. 비루하게 권력과 돈에 집착하는 지배층에 카톡 메시지 공개만으로도 제대로 한 방 먹이는 명 씨에 대중이 환호할 조짐이다. 가히 명태균 현상이다. 그를 유명 인사로 만드는 장본인이 바로 대통령 내외와 여당의 최고 기득권자들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고 정보 강국이 된 이 나라에 기강과 원칙은 무너졌다. 반면 정치적 허무주의와 변태적인 냉소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도덕과 염치가 사라진 나라에서 차라리 악당이 되려는 자가 더 인간적인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이런 컬트 국가에서 시민들은 정치에서 시선을 거두고 반딧불 같은 희망을 찾아 서점으로 몰려든다. 노벨상의 한강 작가가 새로운 위로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 광장에 있던 촛불 시민들이 지금은 서점에 있다.
폭력에 강력하게 맞서던 투사의 이야기를 전설로 남기고 이제는 조용하게 살피고 설득하고 어루만져 주는 작가에게서 더 큰 힘과 에너지를 본다. 먼지 나는 세상을 뒤로 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은 이미지를 작가에게서 찾게 되나 보다. 그리하여 다시 평화주의자, 인문주의자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흠뻑 빠지는 것이 민주공화국에서 시민의 평온한 안식처가 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나도 주말에는 광화문 서점에 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디에 계시겠는가.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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