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명의신탁자로부터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를 직접 넘겨 받는 이른바 '양자간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해당 부동산을 마음대로 처분했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명의신탁의 유형과 관계없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이상 명의신탁자를 형법으로 보호하지 않겠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언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해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8일 사기와 횡령(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각각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별도 범죄인 사기죄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양자간 명의신탁에서 수탁자가 부동산을 처분할 경우 횡령죄로 처벌한다는 종전 대법원 판례는 변경됐다.
이번 사건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이른바 '양자간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 처분할 경우 명의신탁자를 보호할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그동안 대법원은 별다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양자간 명의신탁에서의 명의수탁자도 횡령죄 처벌 대상인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봐 처벌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입장은 결국 양자간 명의신탁상 명의신탁자를 형법으로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한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에도,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법리에서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의 위탁관계를 형법상 보호할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명의수탁자인 피고인은 명의신탁자인 피해자에 대하여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관 13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다.
또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에 대해 상대방으로서 응할 의무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사정만으로 달리 볼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6년 5월 종전 판례를 변경해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에서 임의로 부동산을 처분한 명의수탁자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이란 매수인의 부탁을 받은 명의수탁자가 매도인으로부터 바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받는 거래 형태다. 정상적인 거래라면 소유권이전등기는 매수인에게 넘어가야 한다.
당시 재판부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라고 규정한 ‘부동산실명법’상 무효이고,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며 “이 때의 명의신탁자는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명의수탁자를 형사처벌 하는 것은 부동산실명법이 정한 금지규범에 위반한 명의신탁자를 형법적으로 보호해 부동산실명법이 금지·처벌하는 명의신탁관계를 오히려 유지·조장해 입법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며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인정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3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B씨로부터 23회에 걸쳐 8912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사기)혐의로 기소됐다. 이와 함께 2013년 12월 B씨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해 명의신탁한 아파트를 자신의 빚을 갚는데 팔아 쓴 혐의(횡령)도 함께 받았다.
1심은 사기와 횡령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A씨와 B씨의 위탁신임관계가 형법으로 보호할 가치 있는 신임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사기죄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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