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예산철이다. 오늘도 서울시 예산담당관실의 불은 꺼질 줄을 모른다. 다음달 1일 예산안 공개를 앞두고 시의회에 연일 보고가 이어지고 있으며, 막판까지 특정 사업의 예산이 늘어나고 다른 사업의 예산이 줄어드는 막판 조정작업이 한창이다.
내년 서울시 예산은 올해보다도 10%나 늘어나 44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확장재정', '슈퍼재정'이 낯설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안의 확대 편성 자체는 큰 논란이 없을 거라 여겨진다. 골치아픈 부동산 광풍 덕분에 세입이 증가한 것도 예산 확대 편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2년간 대한민국, 특히 서울을 괴롭혔던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 취약계층을 돌보려면 예산 지원은 필수다. 가장 고통이 큰 소상공인들이 그간의 손실을 어떻게 회복하고 새 도약을 준비할지, 일자리를 잃은, 교육기회가 제한됐던, 소득이 줄어든 이들이 어떤 발판으로 희망을 가질지에 대한 정책과 예산이 필요하다.
매년 되풀이되는 예산안 편성이라지만, 올해 유독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돌아온’ 오세훈 시장표 첫 예산이기 때문이다. 서울런·1인 가구 지원·안심소득 등 오 시장이 4.7 재보궐선거 당시 내세운 주요 공약들과 오세훈표 도시경쟁력 제고 비책인 비전2030이 본격 실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행안부가 서울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서울시는 전혀 다르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행안부는 교육부의 사업과 유사하다며, 보류할 것을 권고했다. 오세훈표 복지실험인 안심소득도 가장 중요한 실험시행을 앞두고 복지부와의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새 시장의 공약 반영, 코로나 대책만큼이나 관심을 모으는 것은 기존 사업의 유지·삭감 여부다. 오 시장은 지난 10년간 진행됐던 박원순 전 시장 당시의 주요 사업들에 대해 수차례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태양광·사회주택·노들섬·마을공동체·청년공간 등 민간위탁과 민간보조금 사업에 대한 재구조화 작업이 ‘서울시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이다.
예산 삭감은 도시재생 30~70%, 노동 60~100%, 마을공동체·주민자치·협치 70~80%, 청년 50%, 사회적경제 45%, 청년 30%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조직과 시민단체의 반발도 상당하지만 이대로라면 삭감될 공산이 크다.
예산 삭감은 단순히 사업비가 조금 줄어드는데 그치지 않는다. 예산은 서울시의 관심과 의지, 방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치구·산하기관 등 관련 단체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2차·3차 여파로 시민 삶에 끼칠 영향이 절대적이다.
당장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인건비가 흔들리면 상근자의 근로환경이 악화되거나 일부는 일자리를 포기할 수도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일선에서 취약노동계층 보호를 담당하는 곳으로 사회적으로 문제된 아파트 경비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컨설팅을 진행해 왔다.
아직 감사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한두개의 사례가 아니라 누가 무슨 규정을 어떻게 어겼는지, 해당 사업의 어느 부분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 가능한지 서울시는 종합적인 감사결과를 바탕으로 재구조화에 나서겠다고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감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예산 삭감은 과정을 건너뛴 결과다.
반발과 혼란, 오해와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지난한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 시장 교체가 과정없는 예산 삭감의 근거로 활용된다면 폭력적, 강압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설사 10년 전 시장 교체 당시를 재현하더라도 시민이 피해를 볼 이유는 없다.
보다 폭넓은 공감대와 공론화가 핵심이다. 당장 선거시즌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 셈법이 다를지라도, 결국 개인·단체·집단이 아닌 시민을 위한 예산이다. 얼마 후 서울시 예산담당관실의 불이 꺼졌을 때, 보다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명분이 남아있길 바란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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