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 "짱구는 멀쩡하네."
13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짱구가 극중에서 바지 내린 장면이 여러장 전송됐다. 뒤이어 게임 캐릭터부터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위의 사진과 영상이 줄줄이 화면을 채웠다. 참가자들은 "수위 높은데 안 가려졌다", "방금 것은 조금 오래 걸렸다" 등 '카톡 검열' 평가를 주고 받았다.
지난 10일 시행된 'n번방 방지법'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이번 방지법은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관련법 후속 조치로, 개인 간 일대일 대화방이 아닌 그룹 오픈 채팅방과 온라인 게시판 등에 적용된다. 그럼에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위헌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 "여기가 중국이냐" 불만
이번 n번방 방지법 적용 대상은 카카오와 메타(옛 페이스북) 같은 매출액 10억원 이상, 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인 국내외 '사전조치 의무 사업자'다. 근거 조항은 전기통신사업법 22조의5와 시행령30조의6이다.
해당 사업자는 성범죄 관련 촬영·합성·편집·복제물 등 유통을 막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불법 촬영물 관련 검색 결과 삭제, 이용자가 게시하려는 영상을 분석해 게재를 제한하는 조치 등이다.
이를 위해 정부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만들거나 국가에서 인증한 사기업 기술로 불법 영상을 걸러내야 한다. 불법 파일 데이터는 이용자 신고나 경찰 수사 등으로 접수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한 영상의 디지털 코드 형식으로 제공 받는다. 사용자가 오픈 채팅방에 붙이려는 파일이 이 코드와 일치하면 게시되지 않는다. 원본파일은 다루지 않는다.
만일 회사들이 불법촬영물 차단 조치를 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매출액 3% 과징금, 사업 전부 또는 일부 폐업, 1년 정지 명령도 받을 수 있다. 관련 기술 조치를 무력화할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계도기간은 내년 6월9일까지다.
불만은 시행 직후 터져나왔다. 한 누리꾼은 언론·출판 검열을 금지한 헌법 21조를 게시판에 붙이고 "검열의 미래"라며 "3인 이상 모여서 대화하는 것은 테러 모의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비밀경찰이 따라붙어서 감시해도 불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선 '카톡 검열 테스트방'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13일 한 대화방에는 500명 넘는 사람이 참여해 다양한 그림 파일을 게시했다. 공지사항에는 "국가와 카카오에 묻는다"며 "대사는 검열 대상이 아니냐. 영상·짤 등 검열 기준과 데이터베이스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설정했느냐. 여기가 중국이냐"고 적혀있었다.
13일 500명 넘게 모인 카카오톡 검열 테스트방. 사진/카카오톡 화면 캡처
실효성 논란 속 위헌소송도
애초 n번방 사건의 주무대였던 텔레그램 등 외국산 프로그램은 이번 규제에서 빠진 점도 실효성 논란도 낳았다. 텔레그램은 오픈 채팅방 형식이 아니어서 개정 법 대상인 '일반에 유통되는 정보'에 포함되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 측은 "소재지 파악이 안돼 어떤 정부도 법 집행이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이번에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사전 검열 논란은 헌법재판소 판단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지난 3월 전기통신사업법 22조의5가 포함된 n번방 방지법이 헌법 18조 통신의 자유와 21조 표현의 자유,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사건은 4월 심판에 회부돼 심리 중이다.
헌법소원을 담당했던 김가연 전 오픈넷 변호사는 "채팅방을 일반에 적용된 게시판처럼 보고 적용하는 건 당연히 통신비밀 침해"라며 "통신 내용을 모두 보지 않으면 검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사람 육안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서 검열 아닌 게 아니다"라며 "이용자가 이용하는 정보를 필터링해서 그 중에 불법 촬영물이 있는지 찾아내는 기술이 가능하다는 것은 국가기관이 예를 들어 '이적물'을 적용하면 얼마든지 필터링할 수 있다. 중국 위챗에 '티벳' 검색이 안되는데 똑같은 경우"라고 했다.
이어 "합법적인 정보인데도 오차단이 일어났다면 표현의 자유 침해이고 그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돼 알 권리도 침해되는 것"이라며 "
대안도 이미 시행중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범죄자 강력 처벌과 피해자 지원, 피해자나 관련 기관 신고로 (불법 영상이) 삭제·차단되고 있다"며 "다른 나라도 왜 여지껏 이런 기술적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겠느냐. 기본권과 국제법 원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n번방은 범행을 통해 만든 신규 영상 공유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번 법이 이름과 달리 제기능을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위헌 논란에 대한 <뉴스토마토> 질문에 "(게시물) 내용을 심사하거나 파악하거나 채록하거나 녹취해야 하는데 이 기술은 내용이 아닌 코드를 보므로 통신비밀과 검열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카카오톡 n번방 방지법 시행 공지. 사진/카카오톡 웹사이트 캡처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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