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씁쓸한 판·검사 엑소더스 행렬
2022-02-07 06:00:00 2022-02-07 06:00:00
“재판 잘하던 분들, 한창 때인 우리 후배들 줄줄이 나가는 거 보면 마음이 착잡하죠. 사실 법원 허리가 나가는 건데 이런 현상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해예요”
 
올해 인사 대상이었던 한 부장판사의 말이다. 올해 70명이 넘는 판사들이 법원을 떠난다. 검찰에서도 두 자릿수 규모 사직이 이어질 전망이다. 유천열·유경필 부장검사 등과 30~40대 평검사들이 사직서를 낸데 이어 최근에는 박하영 차장검사가 검찰을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법부, 사정기관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판·검사들이 해마다 인사 전후로 법원, 검찰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들이 법원, 검찰을 떠나는 이유는 항명성, 정치적 요인 등 제각각 다양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기 저하와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된다.
 
안 풀리는 사건들이 계속 쌓이면서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난데 반해 예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각종 사건 수사 진행 상황과 판결에 대한 여론의 공격이 더욱 거세지면서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던 판·검사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서열에 입각한 인사제도를 무너뜨려 법원 스스로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법관이 동일 직급으로 일할 수 있도록 법관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개혁안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판사들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법관 인사 이원화 제도 역시 그 취지와 달리 매년 초 고법 부장판사들의 잇단 사직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중도 퇴임할수록 더 많은 퇴직금을 주는 명예퇴직 제도와 ‘인사적체 해소’ 방침에 따른 간부급 판·검사 퇴직을 압박하는 분위기는 이른바 ‘서초동 엑소더스’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고참 판·검사들 입지를 좁혀 조기퇴직을 종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평생법관제’, ‘평생검사제’ 방향과도 어긋난다. 
 
이번 인사 전후로 사표를 던진 판·검사 대부분은 로펌행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전관이 전문성을 갖도록 교육시킨 것은 국민이지만 각종 사건을 수사, 심리하며 경륜을 갖춘 이른바 ‘한창때’가 된 이들을 흡수해가는 곳은 로펌이다. 로펌에 있는 전관 변호사의 법률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고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퇴직 판·검사들 로펌행에 따른 혜택은 대기업과 일부 자산가들이 누리게 되는 셈이다.
 
우리 사회를 위해 한창 일해야 할 ‘베테랑’ 판·검사들이 줄줄이 법원, 검찰을 떠나는 현상은 사회적으로 뼈아픈 대목이다.
 
처음부터 로펌행을 염두하고 ‘이력 관리’를 위해 법원, 검찰에 발을 들인 판·검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초임 판·검사 시절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 소신 있는 수사를 하며 ‘우리 사회 파수꾼’이 되고자 했으리라.
 
일각에선 판·검사 보수체계를 전반적으로 손질하거나 잦은 인사이동, 빈번한 사무분담 변경에 따른 비효율성 해소, 원로 법관 제도 확대 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이라도 법원, 검찰 내 판·검사들이 ‘평생 판사’, ‘평생 검사’로 정착시킬 실질적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 국민을 위한 판·검사는 결코 단기간에 양성되지 않는다.
 
박효선 사회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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