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가천대에서 벤처창업학회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 발전방안이라는 주제로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뜻깊은 자리다. 학술대회에서 소개된 연구 중에 경영사 연구 관점에서 벤처창업을 접근하는 논문이 발표됐다. 벤처라는 말이 도입된 지 약 30년, 한 세대가 흐른 이 시점에 벤처창업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나라 경영학계에는 역사적 접근법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다. 양적 방법론에 기초한 논문 작성이 연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수업에서도 경영사를 교과목으로서 가르치는 사례를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경영사는 결코 희귀한 경영학 연구방법론이 아니다. 경영사학이라는 학문의 시작은 1926년 미국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과과정 중 경영정책분야에 '경영사학'이 개설되면서부터였다. 따라서 경영사는 9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언어와 주제로 연구되고 있는 중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이다.
유럽에서도 영국경영사학회와 유럽경영사학회 등 다양한 학회 활동을 통한 출판물이 간행되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해외에서는 경영사에 대한 관심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에는 대학에서 경영사를 강의하는 등 관심이 고조됐다가, 2000년대 이후 차츰 사라져갔다 한다. 이는 아마도 인터넷 도입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산업에 대대적 변화가 생기면서 경영사 연구에 일종의 단절이 생긴 것이라 추론해 본다.
미국 경영사의 대가인 하버드 대학의 챈들러 교수는 미국의 화약제조기업인 듀퐁이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종합화학기업으로 다각화된 프로세스에 대해 기업 내부자료를 이용해 철저히 규명했는데, 이 사례연구를 통해 다각화의 프로세스가 '듀퐁의 축적된 잉여 경영자원을 잘 활용한 결과'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영국의 펜로즈 교수의 다각화 이론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것이었다. 즉, 기업성장에 있어 다각화의 이념이 '잉여자원의 유효활용'에 있다는 것이었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PC통신이 급성장해 사용자 기반이 마련된 후 인터넷 서비스 전환이 이루어졌다. 1997년에는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수많은 닷컴기업들이 등장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인터넷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사회, 경제적 변화를 맞게 됐다.
당시 출현한 벤처기업은 고도의 기술력, 첨단기술을 가지고 고위험과 고성과를 추구하는 경향을 가졌었는데 이는 이전의 기업들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국내에서 정부가 벤처기업을 인증하는 조건으로는 벤처캐피탈 투자유치, 연구개발비 비율, 특허권, 실용신안권에 의해서 생산한 제품의 매출액, 정부 부처별 신기술개발사업 참여 등이 있었다. 이에 해당하는 경우 세제혜택을 제공했다.
특히, 자본조달 방식에서 큰 변화가 생겼는데 벤처는 이전 기업들과 달리 고위험, 고수익의 주식 지분 투자방식으로 자본을 조달했다. 코스닥 열풍으로 이른바 '묻지마 투자'라는 기현상도 생기고, 기대보다 낮은 성과로 인해 IT버블이 붕괴되고 어려운 시절도 겪었다. 그러나 이런 투자방식은 현재의 스타트업 기업들에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 벤처캐피털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들이 경영성과가 높다는 점도 연구를 통해 규명됐으며, 최근에는 글로벌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유치해 추가 투자나 M&A를 통한 엑시트가 이루어질 정도로 발전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로 인해 벤처로 인재가 몰리게 된 것도 벤처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벤처캐피털 투자가 일종의 스크리닝 역할을 하면서 역량 있는 창업자들이 투자 유치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 스타트업 창업자 풀(pool)에도 뛰어난 글로벌 인재들이 유입되면서 벤처, 스타트업에서는 이전 기업보다 자율적이고 유연한 기업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하였다. 디지털 경제 전환과 4차산업혁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나라 벤처, 스타트업의 역사를 연구하며 생태계의 본질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경영사 관점의 연구를 통해 스타트업이 무엇을 해왔는지, 그리하여 스타트업의 의미를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전성민 벤처창업학회 회장·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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