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신'의 특징은 단단함과 유연함이 공존한다는 점에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과 원칙이 있다면 이를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가는 강단이 있었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 험지 출마를 세 차례 강행한 것이 대표적 예다. 패배할 줄 알면서도 도전한 건 자신이 품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정치적 가치를 조금이라도 진전시키기 위한 그의 의지 때문이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유연함도 있다.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 결정은 당시에는 지지자들로부터 비판 받았지만 그의 유연함이 빛나는 결과물이었다. 또 보수정당과 연정을 해서라도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결기도 보여줬다. 이는 현재 민주당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가치다. 원칙있는 패배를 위해 험지에 출마하는 도전 정신도, 정파를 뛰어넘어 다른 진영의 정책을 과감히 수용하는 실용 정치도, 이제는 민주당의 옛 모습일 뿐이다. 그러면서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이 시점에 모두 '노무현정신'을 이야기한다. 친문(친문재인), 친명(친이재명)으로 갈라진 현 상황을 '노무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보려는 심산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노무현정신'은 알맹이가 빠진 전략적 구호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앞으로 3차례 연속 기획으로 진짜 ‘노무현정신’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편집자주)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인간의 자존심이 활짝 피는 사회, 원칙이 승리하는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자 정치를 하는 이유이다."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에 나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어느 누구보다 '원칙'을 강조했다. "원칙 있는 승리가 첫 번째고, 그다음이 원칙 있는 패배, 그리고 최악이 원칙 없는 패배"라고 밝힌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권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이다. 이는 또 하나의 '노무현정신'으로 평가받는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당장 선거 결과를 예단하기보다 과정에 주목했다. 원칙과 명분이 있는 길이라면 패배를 알고도 도전했다.
지난 2002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경선 후보가 민주당 경남지역 국민경선이 진행되는 경남 마산 실내체육관의 연단에서 정견 발표하고 있다. (사진=노무현재단)
노 전 대통령의 이러한 원칙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서 부산에 세 번이나 출마한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에 반대해 민주자유당행을 포기하고 야권에 남았다. 민주당 간판으로 당선되기 어렵다는 부산 선거에 출마해 우직하게 지역주의와 싸웠다. 1992년 부산 동구 국회의원 선거,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낙선했다. 중간에 한번, 1998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었다가 2000년 국회의원 선거 때 다시 부산 지역에 출마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 반대했지만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신념으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결국 낙선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에서 세 번째로 낙선했을 때 한 언론사에 이와 같은 내용의 낙선 소감문을 기고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었다. 상대 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이다." 이후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에 맞서 무모한 도전을 한다는 이유로 그에게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만들어줬다. 또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과 실패는 '노사모'라는 든든한 지지그룹이 생기는 계기가 됐고, 이후 대통령 당선의 큰 밑거름이 됐다.
지역주의 타파를 정치적 목표로 한 노 전 대통령의 의지는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구체적 말과 행동으로 이어졌다. 노무현정부는 충청권 행정수도를 통해 국토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에 공을 들였고, 지역 인사에 있어서도 영호남 출신들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 특히 인사에서 인구 비례를 적용해 합리적으로 하려고 노력했다"며 "인구 대비 비율을 거의 다 맞춰서 인사를 했다"고 밝혔다. 또 "비주류 인사들의 등용을 많이 시켰다"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외에 (다른 학교에서)많은 인재를 등용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연이은 도전은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등 그동안 민주당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영남 지역 민심에 작은 균열을 냈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지역에서 처음으로 민주당 계열의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됐고, 2010년대 들어 부산에서 최대 5석(2016년 국회의원 선거)의 민주당 계열 정당이 승리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보수진영의 텃밭 중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에서도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중선거구제로 치러진 1985년 국회의원 선거 이후 31년 만에 대구에서 민주당 계열 국회의원이 됐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부산에서 만년 야당이던 민주당이 23년 만에 부산의 광역단체장을 자당 소속 인물로 교체했다.
지난 1990년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부산 지역에 출마하며 내놓은 선거 포스터 모습이다. (사진=노무현재단)
하지만 최근 민주당에서는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길을 가려는 인사가 안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6·1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등 영남권의 출마자가 극히 부족해 인물난을 드러냈다. 특히 막판까지 후보자를 찾지 못했던 경북도지사의 경우, 민주당 후보로 임미애 전 도의원 전략공천했다. 지난 대선 득표력에 비쳐봤을 때 이미 승부가 끝난 곳이라고 판단하고 일찌감치 출마를 포기한 것이다. 그나마 이광재 전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당의 요청에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며 선당후사 정신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원도는 이미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득표를 많이 했던 곳이고, 여기에 새 정부 출범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집권여당의 국정안정론 힘이 발휘되는 곳이었다.
반면 이재명 의원은 이 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 의원이 대선 패배 이후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정계에 복귀했고, 여기에 출마지도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한 인천 계양을을 선택해 당 안팎의 비판을 받았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인천 계양을 보다 자신의 정치적 연고지이자 민주당의 험지로 분류되는 경기 성남 분당갑에 출마해 승부를 벌였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를 두고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지역주의 타파라는 신념을 위해, 종로 국회의원을 포기하고 부산 험지에 가서 낙선했던 노무현 님이 그리워지는 밤"이라고 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온몸으로 지역주의 타파를 실천하고자 하는 그런 의지에 버금가는 정치적 결단을 한 정치인들은 그 이후에 거의 눈에 찾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이재명 의원의 계양을 출마에 대해서는 "(계양을은)누가 공천 받아도 무난히 당선이 확실시 되는 지역이었다"며 "차라리 분당갑으로 갔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당 입장에서 험지 중 하나가 분당갑인데, 이재명 의원이 분당갑에 가서 탈환했다면 평가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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