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샵밥비라라라~”
멜 토메(1925~1999)가 묻고 엘라 피츠제럴드(1917~1996)가 답했다. 1976년 제1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펼쳐진 전설의 스캣 대결.
세기를 횡단한 이 영상이 지금 한국 MZ 세대를 달구고 있다. 이것은 실화다.
유명 만화가 주호민(40)과 이말년(40)이 개인방송에서 특유의 개그코드로 멜과 엘라를 따라한 것이 계기다. 이후 열기가 20~30대 젊은 층으로 전이돼 밈으로 번지고 있다. 대중음악계도 “90년대 차승원의 색소폰, 2016년 라라랜드에 이어 유례없는 호재”라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멜 토메(1925~1999)와 엘라 피츠제럴드(1917~1996)가 1976년 제1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펼쳐진 전설의 스캣 대결 영상은 지금 MZ 세대 밈 놀이로 전이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최근 을지로 인근에서 류희성(33) 월간 ‘재즈피플’의 기자를 만나봤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재즈기자’ 역시 이 열풍 속 진앙(震央). 직접 번역해 올린 ‘멜과 엘라의 원본 영상’은 조회수 280만 회를 훌쩍 넘어섰다. MZ 세대 중심으로 피어나는 신 재즈 문화에 대해 그는 “20~30대 젊은 재즈팬들을 중심으로 한 재즈 열풍을 체감한다”며 “애초 예술 장르로 대중화가 쉽지 않은 재즈를 친근한 일상의 음악으로 끌어올린 최근의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재즈는 재밌는 것’이란 인식 전환인 것 같아요. 이제는 재즈계도 세련된 시도들이 생겨나고 젊은 층 수요도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즈피플’ 잡지 구독자들 주소도 대체로 대학교 기숙사 같은 곳이 많아졌고요. 제 유튜브 채널 수요도 70%가 20~30대거든요.”
1990년생인 류 기자는 2019년 ‘재즈기자’ 채널을 열었다. 재즈의 장르적 한계에도 구독자 수가 최근 20만명을 넘어섰다. 주로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는데 조회수가 수백만을 넘길 정도로 인기다. 저작권상 수익은 오롯이 음원 원작자에게 돌아가는 시스템. ‘글 평론’ 위기의 시대에 ‘영상 평론’의 새 가치 창출에도 도전 중이다. 나윤선, 멜로디 가르도 같은 재즈 뮤지션을 인터뷰부터 음반사 ‘블루노트’의 역사 같은 해설성 콘텐츠까지 다룬다.
“(플레이리스트를) 그냥 켜놓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요즘엔 진지하게 듣는 분들도 많이 있으신 것 같아요. 한 번은 오스카 피터슨에 대해서 잠깐 얘기했는데 며칠 뒤 ‘다른 곡도 들어봤다’는 반응도 오더라고요. (해설성 콘텐츠가) 재즈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류희성 재즈피플 기자는 웹진 ‘힙합엘이’ 출신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해외주재원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으로 벨기에·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중고교시절을 보내며 MTV를 즐겨봤고 엘리샤 키스, 비욘세, 에미넴, 피프티센트 등을 즐겨 들었다. “요즘 10~20대 중에는 저처럼 얼터너티브 알앤비와 컨템포러리 재즈 간 모호한 경계를 타고 결국 재즈로 넘어오게 되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여름철 들을 만한 재즈를 추천해달라고 하니 Milton Banana Trio의 ‘Amanhã’, Azymuth의 ‘Last Summer In Rio’, Deodato의 ‘San Juan Sunset’를 꼽았다. 사진=ⓒ안재경 작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난 3년 간 한국 재즈계는 위기였다. 지금은 폐업한 홍대 팜, 압구정 원스인어블루문(블루문)을 비롯해 부산 몽크처럼 잠정적으로 영업을 중단한 곳들이 적지 않다. 상징적인 재즈 공간들이 하나 둘 스러지는 상황에도 최근 재즈계에선 결속을 다지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20~30대 젊은 연주자들 중심의 프로젝트 밴드 ‘한국재즈수비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세대초월 연주자 41명을 섭외하고 앨범과 유튜브 콘텐츠(채널 ‘재즈에비뉴’와 협업)를 제작했다. 한국의 신 재즈 문화 중심에 선 공로로 올해 초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 특별상’도 수상했다.
김광현 재즈피플 편집장(한국대중음악 선정위원)은 “재즈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재즈의 저변화와 대중화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지만, (최근의 유튜브 콘텐츠 제작과 밈 현상은) 잡지가 하지 못하는, 다다르지 못하는 곳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즈의 씨앗을 심은 것이 아닌가 한다”며 “90년대 재즈 거품이 있었고 그 자국이 이후 재즈 시장을 형성하고 좋은 음악가를 등장시킨 것과 비슷할 것이라 본다. 재즈의 단편적인 면만 부각한다는 우려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재즈 대한 벽을 허무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짚었다.
웅산 한국재즈협회장은 “어느 틀에 갇히지 않는 것,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재즈라는 음악 장르의 특성”이라며 “궁금증도 많고 흡수도 빠른 MZ세대의 관객과 연주자 중심으로 재즈라는 음악이 더 세련되고 변화된 모습으로 작은 클럽에서 계속 생겨나는 흐름을 긍정적으로 본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많은 재즈클럽들이 역사 뒤안길로 사라지긴 했지만, 새로운 방향으로 다시 항해하는 재즈계의 새로운 걸음이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재즈 연주자 박한솔(사진)과 이하림 주축으로 결성된 기획 프로젝트 ‘한국재즈수비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세대초월 연주자 41명을 섭외하고 폐업하거나 영업을 잠정 중단한 재즈 공연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앨범을 냈다. 해당 공간을 찾아나서는 유튜브 콘텐츠(채널 ‘재즈에비뉴’와 협업)도 진행했다. 재즈에비뉴 채널에는 이 뿐만 아니라 과거 재즈 거장들의 인터뷰 콘텐츠도 볼 수 있다. 사진=재즈에비뉴 유튜브 채널 캡처
최근 숏 콘텐츠와 밈 등 뉴미디어의 확산과 발전은 재즈 뿐 아니라 대중음악계 전반의 장르 유행과 다변화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한국대중음악 선정위원)는 “재즈 뿐 아니라 요즘 인기를 얻는 유행과 장르는 모두 소셜 미디어와 큰 연관이 있다. 2020년대 들어 록이 유행하는 것도, 뉴진스의 Y2K 스타일이 주목받는 것도 모두 소셜 미디어 (특히 틱톡)에서 유행이 일었기 때문”이라며 “과거였다면 (재즈 밈 현상 등이) 소셜 미디어를 통한 음악 희화화로 비쳐 불쾌할 수도 있었겠지만, 최근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짧은 시간 내 핵심을 전달하는 숏 폼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오히려 관심을 환기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재즈 대중화란 일견 ‘요원한 과업’ 같기도 하지만 류 기자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계기로 ‘콴도콴도콴도’라는 노래가 알려진 것처럼 재즈 아티스트 삶을 다루는 친근한 콘텐츠들이 있다면 아예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클래식 같이 재즈에도 ‘스노비즘’(재즈 듣는다 하면 고상해보이는 듯한) 효과도 있지만, 그것 또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짚었다.
마지막으로 류 기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재즈가 뭘까요?”
“멜과 엘라의 대화처럼 결국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싶어요. 결국 재즈란 음악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언어죠. 웅산, 나윤선, 말로, 이정식, 송영주, 각각 자세히 들어보면 다 그 ‘언어’들이 다르거든요. 멜과 엘라의 대화가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서 좋아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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