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에이즈 감염자와 단 한 번의 성관계로 에이즈에 걸릴 확률은 0.04~1.4%에 불과하다고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밝혔다. 이는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바이러스가 충분한 양이 돼야 하기 때문으로, 소량의 HIV바이러스는 에이즈로 이어지지 않는다.
HIV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하더라도 에이즈 치료제인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HIV 수치를 높이지 않아 에이즈로 발전하기도 어렵다.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김연재 전문의는 기고 글을 통해 "HIV에 감염됐더라도 꾸준히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만 유지하면 에이즈로 발전되지 않으며,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평생 관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낙인은 사회 곳곳에 퍼져있다. 청소년과 청년 HIV감염인 모임인 '커뮤니티 알'의 소주 활동가는 <뉴스토마토>에 "일상생활이나 노동환경에서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아닌데도 '옮기면 어떡하냐'는 말을 하며 차별이나 부당 대우가 극심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같은 사회적 차별과 낙인 탓에 조기 검진과 조기 치료가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다며 "전파매개행위죄는 이러한 편견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HIV 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실제 유엔에이즈 보건전문가들은 2008년 각 정부에게 "HIV를 특정해 차별하는 법과 HIV 상태 공개를 직접 명령하는 법은 HIV 예방, 치료, 관리 및 지원 노력에 역효과"라며 폐지를 권고했다. 2013년에는 "HIV에 대해 형법을 적용한다면 처벌 대상은 '의도적인 HIV 전염'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미국 질명통제예방센터(CDC)도 2021년 "HIV를 범죄화한 대부분 법이 지난 30년간의 HIV 연구와 의학적 발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9일 헌법재판소에 에이즈 예방법 제19조 및 제25조 제2호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제출하며 의료기술 발달로 에이즈를 전파되지 않을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아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서영 인권위원도 <뉴스토마토>에 "지난 코로나19 초창기 시절 감염병을 사회적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게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걸 우리 사회가 경험했다"라며 "코로나에 걸리는 건 불가항력적인 일이라는 게 후에 드러났지만 초창기 코로나 감염자들은 낙인으로 인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위원은 "에이즈예방법은 에이즈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된 상황에서도 혐오와 연결 지어 처벌 대상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장서연 변호사도 에이즈를 범죄화하는 것은 2020년 초 코로나19를 범죄화했던 문제점이 그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추상적인 감염병의 전파 가능성을 형사 처벌의 근거로 제시하고, 뜻하지 않은 감염병 전파의 결과를 가중처벌 대상으로 평가하는 것은 감염병에 대한 낙인과 비난을 조장한다"라며 "개인과 전반적인 대응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고 사회 신뢰를 파괴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에이즈의 날을 하루 앞둔 2021년 11월30일(현지시간) 네팔 카트만두에서 에이즈 인식 캠페인이 열렸다. 이날 자원봉사자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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