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의 의사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의료원 이전 및 현대화 추진 과정에서 예산이 삭감되자 결정권을 쥔 당국, 기획재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섭니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 예산 삭감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전문의협의회. (사진=동지훈 기자)
"기재부가 건물만 새로 지으라 한다"
1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평소였으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진료를 보고 있을 의사들입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기재부의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 예산 삭감입니다.
복지부는 국립중앙의료원과 협의를 거쳐 총 1050병상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기재부에 요구했습니다. 항목별로 보면 국립중앙의료원에 800병상, 중앙감염병병원과 중앙외상센터에 각각 150, 100병상입니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을 인근 반산동 옛 미군 부지로 옮기면서 병상도 늘리려는 계획이었죠.
기재부는 복지부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기재부가 칼을 빼들자 복지부가 요구한 예산 1조2341억원은 1조1726억원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병상은 국립중앙의료원 526병상, 중앙감염병원 134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으로 총 760병상만 꾸려지게 됐습니다.
기재부가 배포한 자료를 보면 국립중앙의료원은 496병상을 운영 중입니다. 기재부는 여기에 중앙응급센터 32병상, 중앙심뇌혈관센터 68상을 더해 총 596병상을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했다고 합니다. 결국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진료권 내 병상 초과 공급 현황, 국립중앙의료원의 낮은 병상 이용률,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526병상을 적정 병상 수로 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이 운영 중인 496병상에는 외상센터 70병상이 포함돼 있어 이와 별도로 신축 건립 예정인 중앙외상센터 100병상을 추가 건립 시 현재보다 70개의 여유 병상이 발생하며, 여기에 30병상을 추가 건립할 계획이므로 실질적으로는 현재 병상규모보다 100병상이 증가한다"는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이 같은 기재부 의견에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장은 "기획재정부에서 발표한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사업 축소 결정은 현재의 병원 규모로 건물만 새로 지으라는 일방적 통보"라며 "국립중앙의료원의 전문의인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충족 필수의료 기능 잃을 것"
국립중앙의료원 소속 의사들이 기재부의 예산 삭감에 강하게 대응하는 명분은 미충족 필수의료 기능 약화입니다.
이들의 말대로 국립중앙의료원은 공익을 위해 설립된 기관입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보면 이 법은 국립중앙의료원을 설립·운영해 공공의료의 효율성과 만족도를 높이고, 수준 높은 공공보건의료기관으로 육성해 공공의료를 선도하게 함으로써 국민건강 증진과 국가보건의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전문의협의회의 논리대로라면 기재부가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예산을 줄여 공공의료의 질이 낮아져야 합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유행했던 감염병 위기 상황을 들고 나옵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관련 사진. (사진=국립중앙의료원 홍보영상 캡처)
이소희 협의회장은 "본원(모병원)의 규모를 늘리지 않고 감염과 외상 병동만 추가로 얹는다고 미충족 필수의료 대응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본원에 모병원으로서 고위험 감염병 환자에게서 동반될 수 있는 감염 이외의 질환(혈액투석, 정신질환, 임신부, 소아 등)에 대한 대응능력과 숙련된 의료 인력을 평소에 갖추고 있어야 적시에 적정 진료가 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감염병 위기 등 의료적 재난 상황 시에 미충족 필수의료 대응을 제대로 하고 국가중앙병원으로서, 지방 의료 격차를 해소하는 중심기관으로서 적정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총 1000병상 이상(본원 800병상)의 규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조필자 국립중앙의료원 총동문회장은 "2002년 사스 유행, 2009년 신종플루 사태를 맞아 국립중앙의료원은 국민을 위해 나섰고 2015년 메르스 위기 때는 기존 환자 진료를 모두 중단하고 메르스 환자들을 위해 전 직원이 총력 대응했다"며 "그렇게 메르스 사태로 텅 비었던 병상이 어느 정도 채워질 무렵 다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국립중앙의료원은 기존 환자들을 또 내보내고 병원을 비우며 코로나19 환자를 받아야 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2015년 민간병원으로 가기 어려운 취약계층 환자들까지 억지로 내보내며 메르스 대응을 하도록 일반 환자 진료를 위축시킨 정부가 이를 근거로 투자를 제한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제2, 제3의 코로나19는 누가 막나"
전문의협의회는 기재부의 병동 계산 방법에도 딴지를 걸었습니다. 단순 숫자 계산으로만 병상 규모가 결정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소희 협의회장은 "새로 짓는 병원마저 병원 규모의 한계로 인해 취약계층에게 적정 진료를 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의 의료 안전망은 포기해야 한다"며 "기재부의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예산 삭감 결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또 "정부는 진료권 내 병상 초과 공급 현황과 국립중앙의료원의 낮은 병상 이용률을 고려해 축소했다고 하는데, 국립중앙의료원이 감염병 위기 등의 재난 상황 시 미충족 필수의료 및 의료 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진료권 내 병상 수라는 산술적인 기준으로 규모가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논의가 20년 넘게 지지부진한 가운데 제대로 된 투자도 없었다"며 "메르스와 코로나19 사태 때 입원해 있는 기존 환자들을 억지로 내보내며 감염병 대응을 하게 한 요인도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이유로 예산을 삭감한다면 제2, 제3의 코로나19는 누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고 몰아붙였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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