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여권 핵심의 ‘안철수 찍어내기’는 정당화의 여지가 없다. 대통령은 여당 전체를 포괄하는 존재다. 대표를 지명하지 않는 이상은 자유 경선을 독려하는 것이 민주적 정당질서의 기본이며, 정치 전략에서도 현명한 처사다.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 시즌6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다뤘다. 대통령은 내내 중립을 지키다가 경선 마지막에 최종 후보셋을 두고 거듭 투표하는 교착 상태가 일어나자, 비로소 의중에 둔 후보를 위해 그를 비토하는 조직을 설득하고 나선다.
대통령 최측근들이 특정 후보를 밀 수는 있다. 이 경우는 더더욱이나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다. 무게중심이 이미 그 후보에게 쏠려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지운동도 아니고 특정 후보들에 대해 연쇄 낙선운동을 하는것은 초유의 사태다. 단, 이 같은 사태를 자초한 안철수 의원의 오류와 실책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그릇됨을 덜어낼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말이다.
대선 시즌인 2022년 1월 24일~25일, 세계일보 의뢰로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가상 양자대결 조사 결과, ‘이재명 대 윤석열'에서는 34.8% 대 41.4%로 나왔고, ‘이재명 대 안철수’에서는 28.4% 대 45.7%로 나왔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물론 ‘이재명 대 안철수’는 실현 가능성이 0에 가까운 구도였지만, 한 가지 참고사항은 던져줬다. 윤석열 후보와 달리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 지지층 잠식력이 제법 컸다. 실제 대선에서 안철수 지지층은 그의 사퇴 이후 윤석열과 이재명 양쪽으로 비슷하게 흩어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기반에 민주당 소극적 지지자를 포함한 국민의힘 비지지층이 분명히 깔려 있었다는 방증이다.
안철수 의원이 이 유권자들을 진작에 챙겼다면 2017년 대선 이래 계속 쪼그라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19년 조국사태 당시에는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조 전 장관 임명에 반대한 유권자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민주당 대선 주자 중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았기에 안 의원에게는 최대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정치력 부재, 바른미래당 분당, 국민의힘으로 기울어지는 선택으로 일관했다. 국민의힘으로 흡수된 것은 그 귀결이었다. 그리고 이는 지지층 일부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었다.
안 의원이 본디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에 깃발을 꽂고 있었고, 한국 선거제도가 다당제 구도를 떠받쳐주지 않으므로, 그가 거대양당 중 한쪽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불가항력이라고 치자. 이왕 국민의힘에 입당했다면 ‘아직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활동해야 했었다. 그러나 그에 걸맞는 행보는 없었다. 지금 안철수에게 남은 카드가 '수도권 대표론' 수준인 것도 그래서다. '중도실용'을 뒷받침하는 이념과 정책이 없으니 '지역'만 남았다.
최근 걸어온 그대로 임한다면 안철수 의원이 대표가 된다 해도 ‘적당히 총선을 치르고 쇠락하는 제2의 이인제'가 된다. 반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명분을 가진 정치인이 된다면 ‘국민의힘판 노무현’이 된다. 안 의원은 그 길로부터 일찌감치 멀어져 있었다. 이를 깨닫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몰락하는 날이 와도 안 의원이 부상할 일은 없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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