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컴포텍, 주라바이오 투자 실패에 결국 경영권 매각 수순
무더기 발행한 CB 상환 실패에 최대주주 변경
담보권 실행 후 유증으로 최대주주 재차 변경 예정
유증·CB 투자자, 기존 최대주주와 사실상 한 몸
2023-09-18 06:00:00 2023-09-18 08:11:3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이원컴포텍(088290) 최대주주인 프로페이스사이언시스가 3년 9개월 만에 경영권을 넘깁니다. 신사업을 위해 무리해 발행했던 전환사채(CB)를 상환하지 못해 결국 경영권 매각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판단됩니다. 유상증자를 통해 최대주주 지위를 넘기게 되는데요. 유증이 완료된 이후 기존 최대주주가 보유했던 물량이 시장에 풀릴 수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됩니다.
 
CB 상환 못해 담보권 실행…이례적 최대주주 변경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3일 이원컴포텍의 최대주주가 프로페이스사이언스에서 ‘오하’로 변경됐습니다. 오하는 지난 3월 이원컴포텍의 7회차 CB를 인수했던 채권자인데요. CB 기한이익상실로 프로페이스사이언스 주식 300만주의 담보권이 실행됐습니다.
 
담보권 실행으로 오하는 지분 12.35%(300만주)를 확보한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기존 최대주주인 프로페이스사이언스의 지분율은 4.93%(119만8342주)로 줄었죠.
 
이원컴포텍의 CB 기한이익상실은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통상 CB의 기한이익상실은 회사의 파산이나 관리종목 및 상장폐지 위험에 처하는 등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는 사유에서 발생합니다. 그러나 이원컴포텍의 CB는 이 같은 사유도 없이 발행된 지 5개월여 만에 기한이익이 상실됐습니다. 해당 CB는 표면금리가 0%로 이자 부담도 없었죠.
 
이원컴포텍의 기한이익상실은 CB 발행 당시 체결했던 특약사항 때문입니다. 해당 CB에는 ‘발행 후 2개월부터 풋옵션 청구가 가능하다’는 특약이 있는데요. 풋옵션은 이원컴포텍이 투자한 미국 상장법인 주라바이오(ZuraBio Ltd.)의 주식으로 대물변제하는 방식입니다.
 
주라바이오의 나스닥 입성은 성공했지만, 이원컴포텍의 대물변제는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원컴포텍이 보유한 주라바이오 지분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상장규정에 따라 보호예수되면서 매매가 불가능해진 겁니다.
 
주라바이오는 지난 3월22일 스팩합병을 통해 나스닥에 상장했는데요. 이원컴포텍의 주식은 단계별로 최대 24개월까지 보호예수된 상황입니다. 상장 후 150일 이내에 20일 이상 12달러(종가 기준)를 유지할 경우 해제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주가 유지에 실패했죠. 결국 대물변제가 불가능해지면서 7회차 CB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했습니다.
 
빚 갚으려 유증…한달새 두 차례 최대주주 변경 예정
 
오하가 CB의 담보권 실행으로 최대주주에 올랐지만, 경영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다음달 최대주주가 다시 변경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이원컴포텍은 담보권 실행 직전인 지난 12일 1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요. 유상증자로 발행되는 신주는 541만5162주. 10월 자금납입이 완료되면 이노베이션바이오조합이 지분 22.30%를 확보한 최대주주가 됩니다.
 
최대주주 변경과 함께 프로페이스사이언스와 오하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17.29%(419만8342주)가 분리매각 되는 등 시장에 풀릴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프로페이스사이언스는 주라바이오 보호예수 해제 무산으로 CB 기한이익이 상실된 지난달 일부 주식을 매도하기도 했죠.
 
이원컴포텍의 경우 최대주주가 프로페이스사이언스로 변경되던 지난 2020년에도 분리매각된 구주 물량이 대규모로 쏟아진 바 있는데요. 당시 사보이투자1호조합 외 3개 조합에 경영권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프로페이스사이언시스가 유증과 CB로 저렴한 신주를 확보했고, 사보이투자1호조합의 보호예수가 끝나는 1년 뒤에 조합을 해산해 자연스럽게 최대주주로 올라서도록 설계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발행주식의 45.18%에 해당하는 물량이 시장에 풀렸죠.
 
주라바이오 주요주주. 이원컴포텍은 Hana Immunotherapeutics LLC의 지분도 40%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SEC)
 
실익 없는 경영권 인수…기한이익상실 CB 다수
 
새 최대주주로 예정된 이노베이션바이오조합은 이원컴포텍 인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딱히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라바이오를 통해 발행한 CB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이죠. 이번 유증 자금 150억원도 전액 채무상환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앞서 이원컴포텍은 미국 신약 개발회사 리마니투스파마(Liminatus Pharma,LLC.)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면서 대규모 CB를 발행했습니다. 프로페이스사이언스가 최대주주가 된 이후 발행된 CB는 649억원에 달하죠. 이중 454억원에는 7회차 CB와 마찬가지로 주라바이오 대물변제 특약이 붙었는데요. 오하가 담보권을 실행한 130억원을 제외해도 314억원의 CB에서 기한이익상실이 추가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업계에선 프로페이스사이언스와 이노베이션바이오조합, 9회차 CB 납입 예정자인 블루1호조합을 사실상 같은 주체로 보고 있습니다. 이노베이션바이오조합은 이노베이션바이오의 김기태 이사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원컴포텍은 지난 1월 이노베이션바이오 3자배정 유증에 참여해 지분 43.92%를 확보한 대주주입니다. 수차례 납입이 연기된 9회차 CB의 경우 신생 투자조합이 자금을 납부할 예정인데요. 프로페이스사이언스는 납입도 안된 9회차 CB 인수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지분을 매도해 2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기도 했죠.
 
익명의 투자업계 관계자는 “CB 투자자와 유증 모두 납입자가 신생조합들인데, 최대주주 변경 과정에서 최대주주와 CB, 유증 투자자가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면서 “외부에서 차입한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장내에 구주가 풀릴 경우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원컴포텍 관계자는 “주라바이오 보호예수 문제로 CB상환에 따른 풋옵션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최근 파이프투자(PIPE Investors) 방식으로 취득한 200만주의 보호예수가 해제됐다”면서 “나머지 물량도 조금씩 풀리고 있고 기존 최대주주의 지분이 매각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CB 발행 등 자금 납입에 최대주주(프로페이스사이언스)가 관여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보호예수가 모두 해제되더라도 대문변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물변제 조건은 주당 10달러이지만, 지난 14일 종가 기준 주라바이오 주가는 6.88달러에 불과합니다. 
 
(사진=주라바이오 홈페이지 캡처)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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