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코리아디스카운트 대책 질문을 받고 상속세 인하 방안을 얘기했습니다. 이 논리는 총수집단이 상속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부정, 편법수단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해외투자자도 투자를 꺼리게 된다는 일부 주장에 근거합니다. 즉, 상속세를 낮춰 현 총수일가에게 영구적 경영권을 보장하면 집단의 부정도 멈추고 디스카운트도 해결된다는 관측입니다.
상속세 폐지에 따른 세수문제를 차치하고 총수집단이 상속재산을 모은 과정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주요 그룹 중 다수는 미군정으로부터 일제의 적산을 불하받았습니다. 이후 고도 성장기엔 경제력 집중을 야기하는 정책 지원과 조세 정책이 쏠렸습니다. 그 사이 불법정치자금과 정경유착 비리, 비자금 등의 부정사례가 수없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창업자에서 자산을 승계하는 시기에 출처가 불분명한 작은 종잣돈이 출현합니다. 박정희정부 땐 가명, 차명거래도 허용되던 시절이니 말입니다. 종잣돈으로 그룹 비상장사를 사들이고 이후 일감몰아주기, 사업기회유용 등으로 키운 후에 상장, 인적분할, 자사주 마법 등이 연결됐던 재계 승계 공식을 따릅니다. 그렇게 자본시장의 그늘에서 눈덩이처럼 자산을 불렸습니다.
KT&G의 1조원대 소송 사례는 기관투자자가 어떤 디스카운트 요인을 문제 삼는지 보여줍니다. 자사주를 경영권 보호에 악용했다는 주장입니다. 내부자의 의사결정이 주주 이해와 불일치 합니다. 그럼 상속세 폐지 논리대로 현 경영진의 내부참호를 막고 정권 낙하산만 하면 펀드의 문제제기는 없을까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을 위해 투자자의 이해와 거리가 먼 이사회 배치, 자본 낭비 등의 행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국민연금의 거수기 이사회 비판은 왜 전문경영인집단에게만 향하는지. 시장과 제도의 투명성이 부족한 국가에 해외 자본이 기피할 것은 자명합니다.
흔히 전문경영인도 임기 중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문어발 확장을 합니다. 단기 실적을 올리는 데 자산을 키우는 것만큼 빠른 길이 없으니까요. 대마불사 경영논리가 지배하는 총수집단도 두말할 게 없습니다. 경제력집중은 경제권력화, 사회 양극화 등 부작용을 낳습니다. 세계 꼴찌 출산율, 세계 일등 자살률은 세계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재벌집단 경제체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같은 민생토론회에서 ‘72억 벤틀리’ 낙수효과를 강조했던 대통령의 발언을 도와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대기업 취업자가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하지만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력은 약화됐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계열사를 늘린 과정을 들여다 보면 배터리, 친환경 테마로 산업 내재화가 폭넓게 이뤄졌습니다. 그만큼 외부 일감을 줄인 셈이죠. 노동계와 다툼 끝에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결 후 원청 대기업이 하도급 인력을 흡수한 사례도 있습니다. 부품, 소재 산업 분야에 문어발 확장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사업자들과 충돌했습니다.
마찰이 없는 원하청 관계라도 기술탈취, 납품단가후리기 등 문제가 없는 게 아닙니다. 웬만한 규모의 협력사도 일정 마진율을 넘기면 더 큰 고객사가 제재한다고 귀띔합니다. 하청에겐 성장한계만 있고 기회가 없는 산업 생태계는 창의력이 부족합니다.
국토연구원이 출산율 꼴찌 원인으로 집값과 사교육비를 지목했습니다. 집값은 왜 오르나요.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가 배경입니다. 지방을 버리고 수도권에 쏠리는 청년들은 엘리트주의, 특권층·기득권 보호에 함몰된 사회구조 탓이 아닌지 자성해야 합니다.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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