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장자 승계가 뚜렷했던 전세대와 달리 재계 3·4세 승계가 미궁에 빠졌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불승계 방침, 최태원 SK 회장의 이혼분쟁 중 불투명한 자녀 승계 구도, GS그룹 내 승계를 위한 지분 경쟁 양상 등이 대표적 현상입니다. 원인을 따지면 상속세인데, 이 때문에 재계가 폐지론에 사활을 겁니다. 또다른 해법으로 기업집단 출자규제를 해소할 수 있는 동일인 폐지론이 부상했습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의 1심 무죄 판결 후 삼성 미래전략실 부활론이 커졌습니다. 사법 족쇄가 풀린 이 회장이 컨트롤타워 부재 문제도 해결하고 나설 것이란 전망이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승계 목적이 담겼다고 해서 합병이 꼭 불법이라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의 1심 판결을 넓게 해석하면 미전실 부활론도 힘을 받는다”며 “재판부 논리대로면 싱크탱크보다 승계문제에 치중했던 미전실도 부정적 이미지가 희석되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항소하면서 이 문제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분위기입니다. 컨트롤타워 부활론은 이 회장이 직접 밝혔던 불승계 방침에 기인합니다. 총수에 의한 그룹 지배가 없는 상태에서 그룹 경영을 어떻게 풀지, 삼성이 외부 연구용역도 의뢰한 바 있지만 결론은 공표되지 않았습니다. 이 회장이 불승계 원칙을 세웠지만 그 대안을 내놓지 않아 여러 관측들이 난무합니다.
SK그룹의 경우 최 회장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이 연말 인사에서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했지만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이란 전망은 높지 않습니다. 지난해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관장 간의 이혼소송에서 최 본부장은 탄원서를 냈습니다. 그룹 내부에선 그러나 부모간 분쟁에 대해 장녀는 비교적 중립적이란 관측입니다. 그럼에도 지분상속은 아직 전무합니다.
최 회장이 3자녀나 지난해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오른 최창원 부회장 등 누구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존재합니다. SK그룹 고위 관계자는 “경영권은 물려주기 힘들지 않겠냐”며 “상속세 내면 경영권 유지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승계가 불투명한 이유는 상속세 때문이란 얘깁니다. 실제 최근 재계와 주요 경제단체들은 상속세 폐지에 사활을 건 모습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목적상 세제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속세 폐지론 외 또다른 승계 해법으로 동일인 폐지론이 대두됐습니다. 그룹 총수가 동일인에서 제외되면 상호출자나 사익편취 등 각종 기업집단 규제에서도 제외돼 지분승계 역시 수월해지는 효과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지난 연말 외국인 동일인 지정 논란을 배경으로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고쳤습니다. 이에 따르면 그룹 총수(자연인)가 아닌 법인이 동일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올해부터 시행된 법령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는 경우에도 법인 등을 동일인으로 볼 수 있는 예외요건을 신설한 것이 골자입니다. 특히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회사(지배기업)에만 지분이 있고 계열사에 지분이 없으면 지배기업에 대한 동일인 지정이 가능해집니다.
재계 관계자는 “사실상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총수 지분을 지주회사에만 두면 지배력을 유지하면서도 지주회사가 동일인으로 지정됨에 따라 기업집단 규제에선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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