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디에이테크놀로지(196490)가 최대주주 변경을 예고한 가운데 새로운 최대주주의 행보에 관심이 몰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최대주주가 될 '오하'가 경영 안정화보단 디에이테크놀로지의 메자닌(주식연계채권) 확보를 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하는 앞서
이원컴포텍(088290)에서도 전환사채(CB) 투자로 최대주주에 오른 바 있습니다.
최대주주 안되는 지분 인수에 100% 프리미엄 제공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디에이테크놀로지 최대주주 이종욱 대표와 ‘오하’는 지난 8일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오하는 이 대표가 보유한 주식 226만3701주를 약 109억원에 인수할 예정이며, 지난 8일 계약금으로 20억원을 지급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최대주주 지위 확보도 어려운 지분 인수에 높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적용됐다는 점입니다. 오하가 이 대표에게서 사들인 주식의 매매가는 주당 4814원으로 계약 체결 전일 종가(2450원) 대비 96.5%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적용됐습니다. 오하로서는 비싼 프리미엄을 지불했지만 오하가 디에이테크놀로지의 최대주주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경영권 양도 후 디에이테크놀로지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가 예고됐기 때문입니다.
디에이테크놀로지는 150억원 규모의 유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주당 3398원에 441만4361주를 발행할 예정입니다. 유증 대상은 ‘디에이티홀딩스’로 이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유증이 완료되면 최대주주는 디에이티홀딩스로 변경돼 이 대표가 다시 경영권을 갖게 됩니다.
디에이테크놀로지는 2차전지 생산 자동화설비 제조사로 지난 2020년부터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기업입니다. 누적된 적자로 회사는 자본잠식에 빠졌습니다. 지난 3분기 기준 자본금과 자기자본은 각각 833억원, 772억원으로 8.38% 부분 자본잠식 상태입니다.
적자 지속에 자본잠식, 콜옵션 통한 엑시트 계획했나
오하는 자본잠식에 빠진 적자기업의 지분 인수에 비싼 프리미엄을 제공했습니다. 유증이 완료되면 최대주주 지위도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런 거래가 성사된 것은 오하가 디에이테크놀로지의 CB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식지분과 메자닌으로 엑시트(투자금 회수) 구조를 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디에이테크놀로지는 경영권 양도계약 체결과 함께 회사 임원 교체와 신사업 진출을 예고했습니다. 잔금 납입이 완료되는 오는 26일 주주총회에서 ‘로봇 제조 및 판매’ 등 로봇 관련 사업목적을 추가하고, 오대강 오하자산운용 전 대표 등 오하 관련 인물들을 임원으로 선임할 예정입니다. 주총 안건이 모두 승인될 경우 오하는 디에이테크놀로지의 이사회도 장악하게 됩니다. 오하가 이사회를 장악하면 디에이테크놀로지의 CB ‘콜옵션’(조기상환권) 및 재매각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CB 콜옵션은 전환사채를 정해진 가격에 되사올 수 있는 권리입니다. 회사가 발행한 사채를 채권자에게 갚는 행위이지만, 상환한 CB는 소멸하지 않고 회사가 보유하게 됩니다. 콜옵션을 통해 회사가 확보한 CB는 향후 이사회를 통해 소각이나 재매각을 결정하게 됩니다.
디에이테크놀로지는 지난 2021년부터 대규모 CB를 발행했습니다. 이 CB 대부분엔 콜옵션이 붙어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디에이테크놀로지의 미상환 CB 잔액은 316억원 규모로, 13회차(잔액 기준 59억원) CB를 제외한 모든 CB에 콜옵션이 있습니다. 7회차(14억원), 10회차(40억원), 11회차(22억원), 14회차(110억원)에 각각 50%의 콜옵션이 붙었고, 8회차(5억원) 70%, 12회차(57억원)에는 15%의 콜옵션이 있습니다. 이중 7회차, 10회차, 11회차, 13회차 CB의 경우 지난 3분기 말 기준 115억원 규모의 CB를 상환했으며 회사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해당 CB들은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조건도 차익을 실현하기에 유리합니다. 14회차 CB를 제외한 7회차에서 13회차 CB가 매 1개월마다 리픽싱이 가능하기 때문인데요. 리픽싱 주기가 빨라 전환가액 조정도 자주 이뤄지고 있습니다. 디에이테크놀로지는 올해 들어서만 여덟 차례 CB 리픽싱을 진행했습니다. 주가 변동에 따른 리픽싱의 경우 3개월에서 6개월 단위로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7회차에서 11회차 CB는 상향 리픽싱 조항도 없습니다.
오하는 다른 상장사에서도 CB를 활용해 최대주주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작년 9월엔 이원컴포텍의 CB 담보권을 실행해 최대주주가 됐는데요. 이원컴포텍이 CB 풋옵션 청구에 응하지 못해 오하는 이원컴포텍의 최대주주인 프로페이스사이언스를 상대로 주식 담보권을 실행해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이후 두 달 만인 11월에 이원컴포텍이 CB를 상환하면서 다시 최대주주 지위에서 내려왔습니다.
오하가 다른 상장사에서도 지분과 CB로 차익 실현을 도모했던 만큼 디에이테크놀로지 최대주주에 오른 것 역시 메자닌 지배력을 확보해 엑시트 구조를 계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 최대주주 지위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영권 인수에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했는데, 경영 정상화보단 다른 데 관심이 있을 수 있다”면서 “해당 회사의 CB에 대규모 콜옵션이 붙어있는 만큼 이를 통한 차익실현 구조를 설계했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진=디에이테크놀로지 홈페이지 캡처)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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