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다시 상속세 화두를 던졌습니다. 지난 20일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독일의 가업승계제도를 언급하면서요. 독일은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요건을 충족하면 상속세를 100% 감면해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일엔 재벌이 없습니다. 독일과 국내 상황을 동일시하는 접근은 경계해야 합니다. 독일에도 창업주가 있고 가족경영식으로 운영하는 대기업은 존재합니다. 재벌에 대한 정의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그게 재벌인지 따져볼 일이지만 일반적 인식에선 벗어납니다.
재벌은 대규모 기업집단이며 지배주주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경영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는 경우로 한정할 수 있는데요. 그 정의대로면 세계에서 재벌은 일본과 미국에 있다가 사라진 후 한국에만 남았습니다. 물론 테슬라의 머스크처럼 신흥 재벌이 출현한 예외적인 사례를 빼고서 말이죠.
상속세 문제에 왜 재벌 유무를 따져야 하는지 반문할 수 있는데요. 특혜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상속세 폐지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해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상속세 폐지는 재벌 총수일가가 얻게 되는 직접적 수혜입니다.
일각에선 기업집단 소유주가 총수일가인데 기업집단의 사회적, 경제적 역할을 고려하면 감면 혜택 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속지분은 막대한 불로소득입니다. 온전히 일만 해서 얻을 수 없는 자산입니다. 어떤 근로자가 평생 노동만 해서 수천억원, 혹은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모을 수 있을까요.
국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책 수혜가 대기업집단에 집중되는 것을 보면 상속지분이 총수일가 개인자산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지분 상속과정에선 보통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했습니다. 다른 방법도 많지만 대표적 사례가 그것입니다.
이를 따져보면 기존에 부족했던 지배주주 지배력은 구조개편 과정 후 지분이 늘어나 해결됩니다. 주식자산이 커지는 데다 경영권프리미엄까지 불어납니다. 또한 자사주는 회삿돈인데 개인자산을 불리는 데 이용되는 격입니다.
더욱이 기업집단에 대한 각종 정책지원, 조세 감면혜택이 국가적으로 부여됩니다. 개인회사였다면 불가능한 정책수혜를 기업집단이라 받습니다. 그런 집단의 지배주주에게 개인 상속세까지 감면해주는 것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쉬울 리 만무합니다.
국가적 지원을 받으면서 구조개편으로 불린 지배주주 개인자산에 대해 상속세까지 없애준다면 사회 불균형과 상대적 박탈감이 심각할 것입니다. 노동의 가치도 무너집니다. 땀흘린 근로소득보다 상속세도 안내는 불로소득이 훨씬 이득이니까요.
상속세 폐지는 정치적으로 반향이 큰 정책 시도입니다. 유독 논란이 많은 이슈를 정부 뜻대로만 관철하려고 하는지 우려됩니다. 앞서 법인세 인하도 논란을 뒤로 하고 관철됐습니다. 심지어 기업에서도 법인세 인하는 ‘정치감세’였단 말이 나옵니다. 사회적 반향은 컸지만 기업들이 체감하는 감면효과는 크지 않다는 뜻이죠. 법인세 인하 논의 당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법인세를 무차별적으로 인하하는 게 좋은 것일까”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작 세제지원이 필요한 산업 분야는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지금 받는 세제지원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겁니다. 경기부진에 시달리면서도 세금을 더 걷을까 불안해 합니다. 티나는 감면이 많을수록 보이지 않는 징세가 늘어날 것이란 걱정에서죠. 특정 분야의 감세 역시 특혜가 될 순 있지만 조세정의를 따져 세밀하게 적용하는 게 바람직한 행정입니다. 거꾸로 일률감세는 행정편의주의, 전시행정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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