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내수 '시름'…금리 부담에 지갑 '꽁꽁'
2년 연속 하락한 실질구매력…실질소비 위축
단, 민간소비 부양책 필요성엔 KDI '반대'
야당 25만원 지급 반대 논리, 논쟁 예상
신용위험지수 2년 연속 상승…수출도 '먹구름'
2024-05-13 17:30:00 2024-05-13 23:01:04
 
[뉴스토마토 백승은·김소희 기자] 물가 상승과 고금리 사태가 이어지면서 지난 2년간 소비를 좌지우지하는 실질구매력이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제유가 폭증 등 외부 요인이 가중되면서 실질구매력 부진에 따른 실질민간소비가 위축됐다는 분석입니다.
 
다만 실질구매력 정체가 올해는 나아질 것이라며 민간소비 부양을 위한 단기적인 거시정책의 필요성이 높지 않다는 게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입니다.
 
즉, 야당이 추진하는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지급에 대한 반대 논리를 펼칠 만큼, 적잖은 논쟁이 예상됩니다.
 
실질구매력 2년 연속 '마이너스'
 
13일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를 보면 지난 2022년 -0.5%, 작년 0.0%로 2년간 뒷걸음질쳤다. (그래프=뉴스토마토)
 
13일 KDI가 발표한 '고물가와 소비 부진(소득과 소비의 상대가격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소비자물가가 소득물가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등 실질구매력이 상당 부분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내수·소비 둔화가 이어졌다는 판단입니다.
 
실질구매력은 실질소비를 결정하는 역할을 말합니다. 소매 물품 가격이 오르면 물건을 덜 사고 실질구매력이 떨어집니다. 소매 물품 가격이 오르는 것보다 소득이 더 오를 경우 실질구매력은 올라가는 식입니다.
 
지난 2020년 실질구매력은 코로나19 여파로 99.8까지 떨어진 후 2021년 104.3으로 전년 대비 4.6% 올랐습니다. 그러나 2022년 103.8로 다시 -0.5% 뒷걸음질 쳤습니다. 작년(103.9)에는 0.0%로 반등하지 않았습니다.
 
생산 제품과 비교해 소비 제품 가격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 가격도 하락했습니다. 예컨대 2022년 코로나19에서 벗어나면서 실질GDP는 2.6% 증가했지만 4.4%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인해 상대가격이 3.0% 하락했습니다. 상대 가격 하락이 실질구매력을 감소시켰다는 얘기입니다.
 
마창석 KDI 경제전망실 연구위원은 "상대 가격은 2022년 3%, 2023년 1.3% 하락했다"며 "이 부분이 실질구매력에 악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제유가 상승, 반도체 가격 하락과 같은 외부 요인도 한몫했습니다. 마창석 위원은 "국제유가 급등과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는 가운데 물가가 빠르게 오르며 실질구매력이 정체됐고 실질 소비가 악화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상대가격이 오르는 등 민간소비가 개선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올해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연간 6% 상승하고 반도체 가격이 37% 오를 것을 예상할 경우 시나리오에 따라 상대가격은 0.5% 상승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특히 반도체 가격이 올라가면 소득은 늘어난다며 단기적인 민간소비 부양책은 필요치 않다는 주장입니다.
 
마창석 KDI 연구위원은 "부양책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 실질구매력을 높일 수 있는 중장기적 구조개혁 정책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여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경제침체가 심각한데 집권 여당이 민생지원금 편성을 위해 추경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지급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KDI 측은 야당의 민생회복지원금 등 특정 정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지난 2월20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가격표를 바꾸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출 안심 일러…신용위험·모멘텀 둔화
 
KDI 측의 논리는 올해 반도체 가격이 상당 부분 올라 실질구매력의 개선을 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창석 연구위원은 "빠른 수출 증가로 올해 성장률은 작년(1.4%)보다 높은 2% 중반대 상승이 관측된다. 또 올해 반도체 가격 급등 영향으로 실질구매력 상당 폭이 개선되며 민간 소비 증가 여력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렇지만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현재 신용위험지수는 2년 연속 악화세를 기록한 상태입니다. 2022년 신용위험지수는 4.8%로 전년보다 1.5%포인트 증가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1.1%포인트 오른 5.9%를 기록했습니다. 신용위험지수는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국외기업 중 신용불량등급 기업의 비중을 나타내는 지수로 신용위험지수가 오르면 전반적인 수출 시장의 악화 요인이 됩니다.  
 
지난해 신용위험 발생 원인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건 '경제제재 대상'입니다. 지난해 경제제재 대상은 1389건으로 전체의 51%를 차지합니다.
 
무보 측은 러 전쟁이 지속되면서 미국의 경제제재가 강도를 더해감에 따라 지난해 미국 경제제재 관련 신용불량등급 발생건은 1389건(51%)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경제제재 대상 건수는 전년(945건) 대비 47% 증가했으며 러시아(734건), 아랍에미리트연합(72건), 중국(59건), 멕시코(58건) 등에서 발생했습니다.
 
무역보험 사고 관련 비중은 28%(754건), 영업중지·파산은 19%(542건) 등으로 조사됐습니다.
 
문제는 7개월 연속 수출 호조세가 올해 2분기를 정점으로 한풀 꺾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출 '상고하저' 흐름에 따라 올해 하반기 기저효과로 인한 수출 모멘텀이 둔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작년에 (반도체 업황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올해 상대적으로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올해 좋아진 현상도 그리 오래 안 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 호황이라곤 하지만 반도체 부분에 국한돼 있다. 반도체 수출액이 늘어난다고 해서 국내 경기와 연관성이 크진 않다"며 "전방위적인 부분에서 수출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니기에 수출과 내수가 괴리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출로 낙수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현 고물가는 이상기온으로 인한 식품물가 상승, 고환율 등 영향이 크며 가계의 소득이 충분, 소비를 많이 한다고 물가가 오른 게 아니다"라며 "거꾸로 가계는 충분한 소비를 못하고 있고 자영업자들의 폐업은 속출하고 있다. 민생회복지원금이 수요를 자극해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조언했습니다.
 
 
지난 3월 9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다. (사진=뉴시스)
 
세종=백승은·김소희 기자 100win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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